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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3.05 14:55:39
  • 최종수정2025.03.05 14:55:38

최한식

수필가

-삼십대 전반의 여성분이십니다. 자기소개 부탁해도 될까요.

영혜라고 합니다, 김영혜.

-예에, 뭐 하시는 분이신지요. 딱히 잡히는 게 마땅치 않아서요.

제 엉덩이에 반점이 있어요, 채식을 한다면 아시는 분도 계시던데…요.

-아아, 그럼 <채식주의자> 주인공 김영혜님 이신가요.

예, 그렇게 말씀드리면 아시더라고요. 제가 별로 말이 없는 편이예요.

-그래도 몇 마디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괜찮을까요.

예에, 제 소신껏 말씀드릴게요.

-갑자기 채식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세 가지쯤 돼요. 온통 거대한 정육점 천정 같았던 잊히지 않는 꿈, 되살아난 어릴 적 기르던 개를 죽이고 먹던 끔찍한 기억, 명치끝에 걸린 목숨들로 인한 한없는 답답함. 그런 이유들이 겹쳐졌어요.

-본인의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많이 불편해 할 거라는 생각은 안했나요.

제게는 생사의 문제였어요. 고기를 보면 숨이 잘 안 쉬어졌어요.

-언니네 집들이에서 친척들 행동이 사랑과 배려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나요.

그랬겠지만 저는 견딜 수 없었어요. 그 자리서 뛰쳐나가려 하다가 그걸로 부족하다 느껴 손목을 그었어요.

-영혜씨의 그 행동이 사람들에게는 경악 그 자체였어요.

제 상태를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게 그것 말고 무엇이 있었을까요.

-형부의 모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전혀 뜻밖이었어요.

사람 아닌 나무이고 싶었어요. 나무가 되고 싶던 내 몸에 꽃을 피우겠다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지요. 꽃과 나무가 내 몸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내가 꽃과 나무이길 원했으니까.

-형부가 몸에 꽃을 그리고 온갖 비도덕적 행위를 할 때, 부끄럽지 않았나요.

내게는 형부가 아닌 같은 나무였어요. 나무이자 꽃이었고, 다른 감정과 의식이 없었어요. 동물들은 이동하고 행동으로 상대를 해롭게 하지만 꽃과 나무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모든 걸 다 감내하면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요. 난 꽃이자 나무이고 싶어요.

-꽃과 나무의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모든 걸 수용해요. 햇살 바람 빗줄기, 심지어 가지를 꺾는 손길과 내리치는 도끼날, 베는 톱날까지 받아주는 게 나무와 꽃이니까요. 나는 언니가 내 집에 찾아왔을 때, 창문을 열고 쏟아지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에 나를 드러내고 가랑이 사이에 꽃이 피려고 가려울 때, 활짝 벌려 꽃을 피웠잖아요.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그랬군요. 영혜씨 때문에 주변 가정들이 깨지고 여러 사람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언니의 삶은 한없이 고달파졌는데….

제게 선택은 없었어요. 그것이 제 삶이자 몫이고, 다른 이들은 그들의 삶과 몫이 있는 것 아닐까요.

-요양원에서 숲속으로 사라져 난리를 피운 적 있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 나는 곳으로 갔더니 숲이었지요. 소리가 멈춰 나도 그곳에 멈춰 있던 것 뿐 이예요. 비가 오고 내 몸으로 물이 올라오고 내 아래로 뿌리가 내리고 몸에서 가지가 뻗으려 했어요.

-언니가 영혜씨도 그렇고 지우, 남편, 일들이 너무 어려워 삶을 마감하러 숲속으로 들어갔었던 것 알아요.

전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아요. 나무들은 꽃을 피우고 햇살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 부는 곳에서 모든 생명들이 어울려 서로 피해주지 않고 사이좋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양원에서 언니에게 이젠 밥 안 먹어도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했잖아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럼요, 나무도 사는데 사람이 왜 못 살아요. 다른 살아있는 것들 살을 먹지 않고도 아주 잘 살 수 있어요. 햇빛과 물만 있으면 넉넉히, 평화롭게 모두가 다 잘살 수 있어요.

-그럼 영혜씨는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살고 싶으세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고 다른 생명들과 어울려 청초하게 살다가는 들녘이나 깊은 산속 찔레꽃으로 살고 싶어요.

-긴 시간 고마웠습니다. 저도 들판의 찔레꽃처럼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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