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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심학규(沈鶴奎) 선생, 심청(沈淸)의 부친을 모셨습니다.

"고마워요, 언제까지 청(淸)이 애비로 불려야하는 건지 모르겠어."

-사시던 때가 고려 말쯤 되나요? 꽤 오래전 분이세요.

"13세기중반부터 14세기 전반을 살았다고 하면 되지."

-선생의 유소년 시절은 그런대로 유복했나요?

"몰락한 양반가문이었어. 그래도 그 시절엔 글줄이라도 읽고 청운의 꿈을 품었으니 괜찮았지."

-시력에 이상이 오고 완전히 상실한 때는 언제였나요?

"20대 초반에는 책을 너무 봐서 그러려니 했는데 점차 심해지더니 삼십이 되 기 전에 완전히 앞이 캄캄해졌어. 비관도 했고 절망에 빠진 적도 많았지. 갑자기 목표가 없어진 셈이야."

-그래도 서른쯤에 결혼을 하세요.

"주변의 권유가 많았어. 그냥두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였겠지. 그때 아니면 결혼도 쉽지 않았을 게야. 가문이 더 어려워졌어."

-부인되는 곽씨(郭氏)는 음전하신 분이셨다지요.

"흠 잡을 데 없었어, 내게는 많은 면이 과분했지. 무척 부지런도 했고. 행복했던 시절이었어."

-결혼 후 10여 년 동안 후사가 없으셨다고요?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거니까. 그 사람이 여기저기 치성도 무척 드렸지. 그 게 하늘에 닿아 청(淸)이를 얻은 걸게야. 아주 좋은 건 겹쳐 줄 수 없나봐, 청(淸)이가 오고 꼭 일주일 만에 아내가 갔어."

-무척 힘들었겠어요. 아이는 어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있고….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느꼈던 절망을 다시 맛봤어. 하지만 그 사람 유일한 혈육인 젖먹이가 있으니 살아야 했지. 아내가 인심을 얻어놔서 그나마 다행이었어."

-청(淸)이는 잘 자라주었지요?

"말썽 한 번 없이, 이렇다 할 병치레도 모르고 컸어. 마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효녀에 미모도 출중했지. 그러니 장 승상 댁에서 수양딸을 하자 했겠지?"

-개울에 빠졌다가 화주승에게 건짐을 받고 몽운사에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기로 약속을 하세요, 좀 과하지 않았나요?

"살려준 고마움에다 눈을 뜬다는 말이 더해지니 제 정신이 아니었어, 정신 들고 보니 무척 황당했지. 내 팔자에 무슨 삼백 석이고, 그렇게 눈을 떠 뭘 하자는 거였는지…"

-결국 따님이 상인들에게 팔려 인당수에 빠지기로 했어요. 놀라지 않았나요?

"알았으면 어떡해든 말렸겠지, 평생 거짓말 안 해서 내가 전혀 몰랐어. 다 내 불찰이야, 누가 쌀 삼백 석을 줘? 결국 날 떠나 인당수로 갔지, 뱃사람들이 내게 나우 쌀과 재물거리를 더 얹어 주었었지."

-청(淸)이 떠나고 어떻게 사셨어요?

"살았다고도 할 수 없었지, 눈물과 탄식이었어. 내 팔자가 왜 이런가하고 한탄도 했지. 그래도 질긴 게 목숨이라고 세월 속에 살아지대. 내 재물 보고 대든 뺑덕어멈도 있었고…. 괘씸하지만 한때 고통을 잊게도 해줬어, 고마운 면도 있어."

-수년 후, 황후(皇后)가 된 청(淸)이를 만나고 그 자리서 눈을 떠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안 할 수 없지, 난 그때 상거지 꼴이었어. 일정한 거처도 없고, 내 설움에 신세한탄이 그냥 쏟아지니, 청(淸)이가 날 알아봤지. 서로 놀라 부둥켜안고 울 었어. 청(淸)이 얼굴을 간절히 보고 싶더라고, 나도 모르게 눈이 힘이 들어가 눈이 번쩍 뜨였어. 새 세상이 열린 거지."

-그 뒷이야기는 안 들어도 대충 알잖아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뭘까요?

"인생사 새옹지마(人生事 塞翁之馬)요 전화위복(轉禍爲福)이지. 절대 미리 판단하거나 조급해하지 말라는 거야. 다 좋은 날이 올 거야, 오게 돼 있어."

-감사합니다. 심학규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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