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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품격 있는 식당에 일가친척들이 모여 저녁을 들고 있고 팔순을 축하하는 걸개그림이 걸려있다. 자리 한 가운데 조금은 마른 주인공이 앉아있다.

-팔순을 축하드립니다. 몇 마디 여쭤보아도 실례가 안 될까요?

"아, 예. 내가 아는 게 없지만 뭔지 몰라도 물어봐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

-팔십년을 사셨다는 건데, 실감이 나시나요?

"몰라, 오래 산 듯도 하고 얼마 안 산 것도 같아. 마음은 이십대 후반이야."

-어느 시절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으세요?

"난 초등학교 시절 같아, 그 육년이 엄청 길게 느껴졌어. 그 시절 친구들이 순수했던 것 같아. 다 어려웠을 때였는데도."

-자손들은 어떻게 두셨나요?

"어떻게? 다 똑같지, 그렇지 않기도 하겠네. 나도 그렇게 2남1여를 두었어, 위로 하나를 잃었고…, 또 손주가 아들 딸 둘이 있어. 손이 좀 귀한 편인가?"

-자녀들로 속상한 적은 없으셨나요?

"왜 없겠어? 그래도 나는 동생들 때문에 더 속상한 일이 많았어, 내가 장남이었거든…. 남동생 둘에 여동생 하나였는데 다 힘들었어. 남동생은, 하나는 생활을 안정시켜 보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안됐고 또 하나는 내 말을 안 듣고 고집이 세서 힘들었고, 여동생은 결혼을 이상하게 해서 어려웠어."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너무 고생만 하시고 좋은 시절을 못 살고 돌아가셔서 안 되셨지, 먹고 사는 일, 자녀 걱정이 그칠 날이 없으셨어. 효도 한번 못 받으시고,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게 느껴져."

-가장 기뻤거나 기억에 남는 날은 언제였던 것 같나요?

"허름한 집에서 어렵게 살다가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예쁘게 집을 지어 처음으로 들어가던 날이 생각나요. 내가 서른여섯이었지 아마, 그 때가 가장 기뻤던 것 같아. 부모님도 무척 흐뭇해 하셨지."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나는 지금도 젊다고 생각해, 그 집을 지을 때는 아마 닭 장사를 하던 시절이었을 거야. 그 일을 한 사십년은 했을 거야. 한 때는 서울로 닭을 납품도 하고, 나름 열심히 살았어."

-세월이 참 느리게 간다고 느꼈던 시절도 있었나요?

"남자들은 다 알거야. 군대에서 제대를 앞두고 있으면 생각은 많아지고 하루하루 날짜를 세고 살잖아, 그때 참 시간 안 가더라고…. 내가 강원도 전방에서 그 시절을 보냈는데 제대 날짜가 '내일 모레' 인데 '1·21 사태'가 난 거야. 김신조 일행이 청와대를 부수러 온 거지, 제대가 차일피일 기약 없이 미뤄지는데 죽겠더라고. 그게 벌써 50년이 훌쩍 넘은 얘기네."

-빠른 시일 내에 이런 건 이뤄지는 걸 보았으면 좋겠다하는 것 있나요?

"아들 좋은 짝 만나 얼른 장가갔으면 좋겠고 나라가 통일됐으면 정말 좋겠어."

-혹시 후회되는 일은 없으세요, '지금이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하는 일요?

"글쎄…, 있긴 할 건데 금방 생각이 안 나네. 아, 이건 공개된 비밀인데 내가 한때 주식을 해서 돈을 좀 잃었어, 개미들이 딸 가능성은 별로 없을 텐데, 그 때는 내 머리로 하면 될 줄 알았지."

-이제 팔순을 지나시는데 건강을 위해 특별히 남들에게 권하고 싶은 거 있으신가요?

"내 한 몸 추스르기도 어려운 걸 누구에게 뭘 권해, 남들 다 하는 말로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 운동해야지, 운동.' 자주 걷고 되는 대로 맨손체조 하는 게 좋아."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글쎄…, 사람들이 어떻게 들을지 모르겠는데, 난 왜 살수록 "삶은 개인적인 체험이다"라고 느껴지나 몰라. 아무리 가까운 이들에게 얘기해도 내 말을 잘 안 받아 들이고, 나도 다른 사람 얘기 들어도 그대로 잘 안 되더라고. 그리고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자"는 거야. 조금 시시하지."

-오늘 모인 가족 친지 분들께 한 마디 해 주시죠?

"그 낯간지럽고 상투적인 말? 해본 적 없는데….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 질문에 긴 시간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팔순을 맞은 분과 함께 했습니다. 모든 분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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