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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초로의 누추한 여인이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누구를 찾고 계시나요?

"아니 뭐, 그냥. 주변을 지나다 한번 들러 봤어요."

-혹시 누구신지요? 이야기라도 나누실 수 있을까요?

"나? 신데렐라. 한 때는 꽤 유명했어, 처녀들이 난리였지. 청년들도 줄을 섰었고…. 다 지나간 얘기야."

-예? 신데렐라시라면 어찌 이렇게 추레해지셨어요?

"메뚜기도 한 때라고 항상 잘 나갈 수는 없는 거여."

-그래도, 왕자님이 찾아내서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했잖아요.

"얘기를 거기서 끝내 그렇지, 그게 오래 못 갔어."

-아니,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예요?

"잘 새겨들어야지, 사실은 그 뒷얘기 좀 하려고 왔어."

-실망이 너무 클 것 같은데,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꼭 하고 싶어. 많은 사람이 아는 것보다 진실이 중요한 거잖아, 진실이…."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까지는 다 알아요. 그 후를 얘기해 보세요.

"거기까지는 반도 안 돼, 그 뒤가 더 길고 중요한 거여. 그 뒤가."

-왕자님과 궁궐에서 알콩달콩 사셨던 거 아닌가요?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게 오래 못 가더라고. 얼마안가 내게 시들하고 다른 여자들에게 왕자 눈이 휙휙 돌아가더라니까."

-열나게 온 나라를 헤매며 찾아다닐 땐 언제고…, 이유가 뭐지요?

"내게 싫증났대, 내게 야생 미, 날 것 같은 게 있었잖아. 항상 그럴 순 없는 거더라고. 어느 순간 촌스럽다고 하잖아 글쎄."

-그거야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내가 뭐 왕궁의 예의범절이나 교양하고는 거리가 좀 있잖아. 그게 문제가 되더라고. 그건 왕자보다 위 어른들이 더 따지고 날 힘들게 했어."

-왕자의 아내로 곧 왕비가 되실 텐데 그 정도는 견디셨어야지요.

"그게 어려웠어. 궁궐에 어디 내 편이 있어야지. 다 시기질투만 그득해서…."

-외롭기도 하셨겠네요. 그래도 미모가 있었잖아요?

"그거, 오래 못 가는 콩깍지여. 맨날 보니까 며칠 못가 시들해지데…. 게다가 궁궐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예쁘고 젊은 것들이 줄줄이 나타나."

-신데렐라님께 열광했던 백성들이 있었잖아요, 끝까지 지켜주지 않던가요?

"처음에는 모두가 내 편인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싹 돌아서. 무섭더라고…. 내가 왕비가 되기에 결격사유가 한둘이 아니래나."

-무슨 말인가요? 결격사유라니요?

"처음엔 파격의 시원함이랄까, 온 나라가 들썩이다가 조금 지나니 무례하다나. 신분이 귀족이 아니라 하고(난 천민이래), 교양이 없대(뭘 배울만한 형편이 아니었지). 하여튼 한두 가지가 아니래."

-왕가나 백성은 그렇다 해도 신하들은 사리를 따져 간언했겠지요?

"더 난리였어, 폐비하고 새로 뽑으라나, 다 자기 연줄 넣으려고 눈이 벌겠어. 결정적으로 그것들 등쌀에 더 못 살겠더라고."

-그래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자녀는 두셨을 것 아닌가요?

"자녀들, 말도 말아. 왕은 애 낳는 게 큰일이래. 여기저기서 낳아 싸는데 한둘이 아니야. 그들 팔자도 기구해. 누가 왕세자가 되는가에 살벌해."

-나중을 위해 사가에 뭔가 좀 챙겨 두실 순 없었나요?

"내가 사가가 어디 있어? 계모? 심술 맞은 언니들? 앓느니 죽지."

-어려웠을 때 도와주던 요정님은 그 후론 도와주지 않던가요?

"궁궐에 간 뒤론 본적 없어. 왕자 만난 후로 모든 게 더 살벌해지더라고."

-그럼 궁궐에선 언제 나오신 건가요?

"얼마 안 돼서, 일 년도 못 돼서 나왔어."

-그 후로 왕자, 아니 왕께서 한 번도 찾지 않던가요?

"몰라, 그 뒤론 관심 없었어. 나도 질리고 신물이 났거든. 궁궐 밖에 삶이 훨씬 자유롭고 좋았어."

-그럼, 불행했던 건 아니네요.

"고생이었지. 뭐든 쉬운 것도 없고, 공짜로 주어지는 것도 없어."

-오늘은 충격적인, 한편으론 아주 귀중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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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