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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가상은 가상일뿐, 맞고 틀림이나 종교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흰 저고리 검은 치마의 소탈한 여인을 만납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예, 하지만 제 소개는 의미가 없어요. 이름도 모를 게고 지난 세월을 잘 헤아리지 못해 언제 이 땅에 살았었는지 분명치 않아요. 그냥 한 때 이 땅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사람으로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현재 생존해 계신 분은 아니시군요?

"주로 저 같이, 오래 전 사람을 인터뷰 해 오신 걸로 압니다만…."

-아, 예. 그럼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어 찾아오신 게로군요?

"제가 저 곳에 있다 보니 큰 사고나 억울한 일로 일시에 많은 분들이 오시는 경우를 자주 보았지요, 초기에는 그분들이 이목을 끌지만 얼마안가 서로 익숙해져요. 그곳이 근심 걱정이 그리 크지 않으니 곧 적응을 하고 잘 지내지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실 텐데요, 그곳이 공간적으로 우리 사는 이곳과 분리된 곳인가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육체를 벗어나니 공간의 의미가 크지 않아요."

-그곳에서도 질투, 미움, 사랑 같은 감정을 느끼나요?

"단순하지 않아요. 그곳에서는 단체 같은 개인이라 할 수 있지요. 흔들리는 기체처럼 존재하고 때로 개별적으로 이탈할 수 있어요. 형체가 분명한 것이 아니니 개 별적 인식이 조금 어려운데 원하면 할 수는 있어요. 적나라한 감정을 벗어나, 약한 경외감과 아쉬움 정도를 느낄 수 있지요. 이성간의 사랑 감정은 미약해요."

-이 땅에서의 은원과 이해관계가 그곳에서도 이어지나요?

"아이들 놀이에서 상대편이, 연극에서 주인공과 악역이, 놀이가 끝나면 친구이듯, 서로에게 깊은 원한 감정은 없어요. 그곳에서는 여기를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 왔느냐보다 그곳에 있다는 게 중요하고 그곳은 이곳보다 훨씬 더 평온하지요."

-사고나 억울한 일로 죽은 이들이 그곳에서 느끼는 한과 분노는 어느 정도인가요?

"그런 일을 당하신 분들은 그런 분들을 쉽게 알아보지요. 우리나라의 근세만 해도 왜란과 호란, 동학란, 일제침탈과 좌우익 대립, 한국전쟁과 4·19, 5·18, 세월호 같은 일들로 갑자기 오신 분들이 많은데 세월과 함께 서로 위로받고 무뎌져서 얼마 안가 잘 지내게 되지요."

-아참, 아주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곳에도 빈부의 차이나 주택의 대소, 신분의 차이가 있나요?

"육체적 제약을 벗어나면 그런 것들은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런 게 있다면 그곳도 경쟁과 시기가 넘쳐나겠지요."

-많은 종교에서 사후세계를 언급하며 이 땅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그런 말들을 하지않나요?

"제가 정확히는 몰라요.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끼기도 하겠지요. 이 땅에서도 똑 같은 걸 보고 들으면서 어떤 이들은 정반대로 생각하지 않나요? 자신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테니까요. 이 땅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땅의 언어를 사용해 오해가 생긴 걸 거예요."

-잘 모르겠네요. 좀 자세히 알려주실 수 없을까요?

"깊이 알려하지 마세요. 때가 되어 그곳에 가면 그냥 알아지니까요."

-이 땅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모해주면 자존감이나 긍지가 느껴지나요?

"잘 모릅니다만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필요에 따라 기리고 추모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그곳에서는 그런 일에 그리 마음 쓰지 않아요."

-그곳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두는 일이 있나요?

"육체를 벗어나, 그런 일은 없어요."

-천국과 지옥은 어떤가요?

"정확히 몰라요, 이 땅에서 알던 이들을 다 만나지는 않으니까요. 단체 같은 인으로 존재하거든요."

-이 땅에서 슬프게 비명에 간 사람들을 애도하는 것은 어떤가요?

"별 영향은 없어요, 이 곳 사람들의 슬픔을 덜어내는 거라 생각해요. 그곳은 이 곳 보다 훨씬 나아서 편히 지낸다고 보시면 돼요."

-긴 시간 고맙습니다. 특별한 분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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