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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쉽게 말을 붙일 수 없을 듯한, 신념으로 가득 찬 개결한 선비의 느낌이 나는 이 흰 두루마기에 갓을 쓰신 전통 선비차림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면암 최익현이오. 예전 사람들은 웬만하면 나를 알았는데 요즘엔 생각들이 통 다른 곳에 기울어있어 나를 알라나 모르겠소.

-그러면 혹시 구한말 개화를 반대하고 단발령에 저항했던 '위정척사'의 상징이셨던 그 분이신가요?

"그 사람이 나요."

-역사상 아주 힘든 시기를 사셨어요, 1833년에 태어나서 1906년에 별세하셨으니 격동기를 통과하셨어요. 22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살이도 하셨어요.

"항상 현재가 과도기고, 힘들고 중요하지. 내 때도 세도정치로 삼정 문란과 처의 난리, 서양과 왜인의 횡포로 빤한 날이 없었지."

-고종이 왕이 되자 대원군이 섭정을 했어요, 그분이 왕권강화를 기치로 경복궁 중건에 진력했어요. 그걸 선생이 극력 반대하셨는데 그동안의 적폐를 청산하려면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그분 심정은 알지만 너무 폐해가 컸어. 나라의 대 역사는 종합적 검토가 반드시 있어서 득과 실을 세심히 판단해야지. 나라와 백성 모두에게 지나친 고통과 어려움을 주는 일이었어. 그 중에 핵심 네 가지를 반대한 거지."

-그 5년 후에 또 서원철폐를 비롯한 대원군의 실정을 '계유상소'로 지적해 대원군을 실각하게 했어요. 그러고 제주도로 유배당해 위리안치를 겪으셨지요.

"나라가 바로 되는 게 중요하지 내가 한두 해 귀양살이 하는 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정신을 수양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밖에 나갈 일 없고, 날 지켜주니 걱정할 게 뭐여. 다 마음먹기 달린 거지."

-1876년에는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는 도끼상소로 또 흑산도로 유배를 가셔요, 선생이 반대한다고 왜와의 관계가 중단되리라고 판단하셨나요?

"그 정도 판단력이면 상소도 않지, 시대의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 양이와 왜가 다 장사하자고 다가와, 왜는 자기들이 당한 걸 그대로 한 거거든. 조약을맺고 그들과 관계하기엔 우리가 모든 면에 너무 허약했지. 일방적 피해가 분명한데 누구든 반대를 해야지. 그래야 상대가 우리를 막 무시하지는 못할 것아니야?"

-1885년 말쯤에 전국적으로 단발령이 내려요. 그때도 극렬하게 반대하셨어요. "내 목은 자를지언정 상투는 자를 수 없다"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고요. 단발의 장점도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나요?

"사건의 맥락을 봐야지. 우리가 고민하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 아니고 왜가 선비와 유학자라는 우리 핵심세력을 굴복시키려는 거잖아. 상투는 어른의 표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존심이었던 거지. 왜를 향한 저항이고…. 고귀함을 버리고 저속함으로 간다는 느낌도 있었지."

-무척 복합적이었군요. 젊어서 과거에 급제하셨는데 관직은 성격에 잘 맞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타협과 양보를 싫어하니 안 맞지, 부정을 보고 그냥 넘기기 어려운 성미도 한몫 했고…. 어디에나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꽤 많았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돼요. 그때도 반대상소를 올리고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며 태인에서 의병을 모집해 항쟁하셨어요. 고종의 해산명령에 부대를 해산하고 일제에게 재판을 받아 대마도에 감금당하셔서 끝내 그곳에서 숨을 거두시잖아요. 본인의 삶을 스스로 평가해 주실 수 있나요?

"최고 지도자는 항상 '사람의 장막'에 갇히기 쉬워. 누군가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바닥의 소리, 시대의 깨우침'을 전해야 하는데 한때나마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았나 싶어서 그런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

-이야기를 맺으며 한 마디 꼭 하시고 싶다면요?

"산다는 게 쉽진 않지만 자신의 신념과 성격대로 사는 것도 멋있지요, 자신의 판단을 기반으로 본인의 삶을 사세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념을 따라 대쪽 같은 삶을 사신 면암 최익현 선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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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