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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안녕하세요. '타히티의 여인들'의 화가, 폴 고갱을 만나봅니다.

"반갑습니다. 아시아의 코리아에서 나를 불러주네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는 누구든 초대합니다.

"제 이야기는 쑥스러운 것 밖에 없어 좀 그러네요."

-시작해 볼까요? 청년기에 꽤 오래 배를 타신 걸로 아는데요?

"여섯 해쯤 되나 보네요, 뭘 제대로 알았거나 선원생활을 동경해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경험이 두려움을 없애 주었어요. 내가 본래 야성적인 면이 있지만 그 기억이 자주 바다로, 섬으로 날 부른 게 아닌가 생각해요."

-파리로 돌아와 주식중개인을 했어요, 할만 했나요?

"막막했던 시절에 큰 도움을 준 이가 어머니의 지인이던 '구스타브 아로자'라는 분이었어요.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분이지요. 그분이 주식중개인이 되도록 힘써 주고 아내인 '메테 가트'를 소개해 주었지요."

-부인과 결혼한 이야기를 해 주시죠.

"별로 할 얘기는 없어요, 그 사람은 덴마크 출신이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마음이 기울었지요. 그 나이 때에는 사리분별도 안 되고 모든 게 좋아 보이잖아요. 그녀가 예쁘고 단아한데다 나는 젊어 피가 끓어 욕망이 넘치고 분출하는 열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보이는 게 없었지요. 열렬히 구애하고 청혼해서 이듬해 결혼했고 행복했어요."

-자녀들은 얼마나 두셨나요?

"그녀와 10여년 살았는데 자녀가 5명이었어요. 경제적인 여유도 있어서 그림을 수집하고 직접 그리기도 해 꽤 인정을 받았으니 지낼 만 했지요."

-잘 지내다 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화가가 됐나요?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요. 내 나이 서른둘에 주식시장이 붕괴했어요. 갑자기 직장을 잃은 셈이야, 그때 그림을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지요. 내 핏속에 끼가 있었다고 봐야지요. 그러나 전혀 순탄하진 못했어요. 취미활동과 직업은 평가 잣대가 너무 달랐지. 긴 방황이 시작됐어요. 그게 서른다섯 살 때예요."

-퐁타방 시대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때도 좋았지요,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던 때니까요. '마들렌'도 그곳에 있었고…. 결국 나 혼자 좋아한 거였지요, 그녀는 내 제자를 좋아했고 일찍 죽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와 지내던 시절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좋은 시작, 나쁜 끝'이었지, 언제부턴가 고흐가 '화가공동체'를 자주 언급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아를'이 무척 좋다며 초청했어요. 나를 좋게 봤지요. 망설였어요. 그런 게 오래 가기는 어렵거든요. 예술인들이 함께 사는 게 만만치 않아요. 차이가 많았지요. 그가 자기 귀를 자르고 나중엔 자살했잖아요, 내 잘못은 없었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타히티 섬에는 왜 간 거예요? 현실 도피인 셈인가요?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도시 중심의 유럽문명에 숨이 막혀 영혼의 자유를 찾아 오염되지 않은 원시로 가자는 의미였지요. 청년시절 배 탔던 기억으로 푸른 바다, 인류의 고향인 에덴에 살고 싶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미대륙 중간쯤인 망망대해의 섬, 타히티가 제격이었지요."

-원하던 걸 얻었나요?

"완벽하달 순 없어도 그런대로요. 모든 게 건강한 여인 '테후라'와 꿈같은 세월을 보내고 그림도 꽤 그렸으니까요. 그 섬은 내게 '유토피아'였지요. 몸과 마음과 정서와 무의식의 때를 벗고 고향에 왔다고 할까. 내 생애 최고였어요…."

-살면서 가장 미안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요?

"나를 알던 모든 이들에게 다 미안하지요, 그 중에도 자녀들, 함께 했던 여인들, 반 고흐…. 나처럼 안 되려면 지금 함께하는 이들에게 아주 잘 해야지요."

-긴 시간 진솔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폴 고갱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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