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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조선전기 여섯 왕을 모셨던 다재다능했던 보한재 신숙주 선생을 모셨습니다.

"내가 충북과는 인연이 있지요. 내 묘는 경기도 의정부에 있지만 청주 낭성면에 있는 묵정영당에 내 초상화가 있어요."

-선생에 대한 평가가 양극으로 나뉘는 거 알고 계시죠?

"자신에 대한 평가에 민감한 게 인간인데 모를 리 없지.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어. 자신의 확신이 중요한 게지."

-자신이 어떻게 소개되길 원하시나요?

"언어학자. 내가 쓴 책도 많고, 외교에도 나름 업적이 있지. 군사적인 면에도 한 견해 하지만 역시 언어학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한글 창제에 기여한 바가 무척 많으시죠?

"자타가 인정해주지. 하나의 언어를 누구 혼자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그래도 최대 공로자는 세종임금이고요."

-선생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누군가요?

"한 명을 고르라면 세조지만, 세종대왕과 성삼문을 잊을 수 없어."

-세조와의 인연을 간단히 말씀해 주시죠.

"그게 선연(善緣)인지 악연(惡緣)인지가 참 애매해. 내가 서른여섯이었지, 1452년 팔월이었어. 수양대군이 내게 술을 권하며 사직을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생각한다 했더니 고명사은사로 명나라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 순간 내 심중이 무척 복잡했어, 알았다고 했지. 그걸로 끝난 거야, 고수들의 한 수 겨루기였지."

-단종을 폐하고 세조가 되어 그 뒤에 펼쳐나갈 일을 다 예상했다는 건가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감을 잡고 있었으니까. 매듭에는 결단해야지. 주인공이 아니면 결국 줄서는 일이야."

-그 당시 국정이 혼란스러웠나요?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어. 불꽃만 튀겨도 큰불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할까, 31년 반을 통치했던 세종임금이 죽고, 새 왕이 백성과 신하들이 적응도 하기 전에 승하하고, 12살 난 왕이 즉위했으니 뒤숭숭했지. 수렴청정(垂簾聽政)할 이마저 없어 몇 신하가 국정을 처리하니 불안했어. 모두가 심란했지."

-그럼 한없이 답답했겠어요.

"그게 문제였지. 예법과 인륜으론 전혀 문제가 없는데, 현실은 뭔가 위태위태한 거야. 그런 기운에 제일 민감한 게 대신들이야. 어느 줄에 서느냐가 명운을 가르니 단단한 줄을 잡으려 난리지. 당시 세종과 소헌왕후 사이 첫째가 문종이었고, 문종의 유일한 아들이 단종이었어. 12살 단종이 즉위할 때 둘째인 수양대군이 서른여섯, 셋째인 안평대군이 서른다섯이야. 그 둘에 대신들이 몰렸지. 둘 다 임금감이지만 왕위 승계에 적통이 아니었어."

-결국 계유정난과 단종복위 사건으로 거듭 피가 튀고 생사가 갈렸어요, 그 가운데 충신과 역적도 가려졌고요.

"강요당했지.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 죽고, 역적이 되지 않으려 죽고…. 가혹했지.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내가 두고두고 욕을 많이 먹어, 아직까지도…. 난 누군가는 살아 나라를 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냥 죽기엔 선생 재능이 너무 아까웠지요.

"그런 차원이 아니야. 매사 두부모 자르듯 간단하지 않아요. 나라에 구심점이 없이 오륙년을 지내는 게 쉽지 않아, 왕실뿐 아니라 대신들도 불안해. 차악(次惡)이라 생각했어."

-현실은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녹두 나물이 숙주나물이 되었어요, 두고두고 그렇게 불릴 텐데, 억울하지 않으세요?

"선택의 결과지, 후회는 없고 그런 상황이 또 온다면 같은 선택을 하리라 생각해. 사람마다 다르겠지, 내 선택이고 그 책임은 내가 확실히 져야지."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 주세요.

"선택은 책임과 닿아있어요,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보한재 신숙주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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