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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2.02 14:48:58
  • 최종수정2024.12.02 14:48:58

최한식

수필가

-사십대 후반 쯤 보이는 여인입니다. 귀티 나는 이지적 인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작업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긴 하지만요. 혹시 저를 아시나요?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옥봉이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를 살았던 왕족입니다. 비록 서녀였지만…. 저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어쩌면 황진이에 비할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런 제게는 시가 멍에였고 재앙이었습니다.

-왕손에 서녀, 여류시인,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운명이었을 듯한 느낌이 옵니다. 다른 길을 갈 수 없는….

그랬지요, 부친은 저를 시집보냈지만 남편이 죽는 바람에 얼마 못가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이미 시에 재능 있음을 알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지요.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나도 후천적 개발이 필요한데, 드문 기회를 운 좋게 잡으셨군요.

부친이 제 재능을 알아보셨지요. 어느 순간 돌출되어, 부친이 방치할 수 없다 판단하셨나 봐요. 제게 글을 가르치셨어요. 잘 됐다든지, 참 좋다는 게 아닌 서글픈 듯,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제가 시를 지어 부르면 부친은 놀라고, 당황하시는 것 같았어요.

-시를 많이 짓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남편을 여의고 친정에 돌아왔을 때, 부친이 옥천군수셨는데 시문에 명성이 있으니 어느 날 당시 시문으로 유명한 분들이 오셨지요. 그날 술자리가 길어지자 부친이 저를 불러 시를 짓게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이 제 시를 듣고 놀라는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소문이 퍼졌고, 시 지을 일이 자주 생겼지요.

-그때 그곳에 계셨던 이들이 어떤 분들인지 기억나세요?

나중에 부친께 들으니, 서애, 송강, 백사, 운강 그런 분들이라고 하셨어요. 그날 강한 인상으로 내 인생에 깊게 얽힐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분이 운강(雲江) 조원(趙瑗)님이었어요.

-대단한 분들이긴 했네요. 그런데 타고난 시재가 재앙이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그 모임이 있은 후, 그분 생각이 잊히지 않아, 한양으로 가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드는 작은 공간을 냈어요. 시에 대한 허기를 채우려는 제 욕심의 발로였겠지요.

-그 뜻을 이루시고, 사업도 잘 되었나요?

그렇다고 해야지요, 하지만 제 바람은 다시 운강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제게는 그분뿐이었으니까요.

-뜻을 이루셨나요?

그런 셈이지요. 그 분을 만나 첩이 되고 그분의 임지에 함께 가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자주 제가 지은 시가 너무 많은 입들을 거치고 노래가 되어 길거리를 채우니 운강이 수시로 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시 때문에, 그것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膾炙)되어 어려움을 겪다니요….

많은 이들이 운강을 시기했어요. 왕의 총애가 너무 컸었나 봐요. 시는 해석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으니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어요. 그분은 저를 들이며 시와 자신 중 택일하라 했고 저는 의지(意志)로 그분을 택했지만 시가 버려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재앙이라 부를 결정적 사건이 있었나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송사에 휘말린 이가 있었는데, 그 부인이 제게 와 사정을 했어요. 그분에게 호소해달라는 것을 제가 시를 지어 돌려보냈어요. 그 시로 사건이 해결되었는데,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이제 송사에도 관여하는가 하고 노발대발해 제가 쫓겨나게 되고 그 후로 걸인처럼 광인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했지요. 제 시와 삶이 중국까지 알려졌지만 결국 시재는 제게 한이요 재앙이었던 셈이지요.

-자신의 시가 중국에까지 알려진 것은 어떻게 아셨나요?

저 세상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돼요. 한 서린 저는 제가 지은 시를 몸에 두르고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는데, 운명이었던지 중국 선비에게 발견되어 그가 제 시를 책으로 엮어 보관하고 있었다 해요. 저는 재주 없이 평범한 게 행복이라 생각해요.

-오늘 특이한 분을 만났습니다. 평범함이 행복이라 합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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