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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사십대 후반 쯤 보이는 여인입니다. 귀티 나는 이지적 인상입니다. 안녕하세요?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작업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긴 하지만요. 혹시 저를 아시나요?

-자기소개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옥봉이라고 합니다. 조선 중기를 살았던 왕족입니다. 비록 서녀였지만…. 저는 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어쩌면 황진이에 비할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런 제게는 시가 멍에였고 재앙이었습니다.

-왕손에 서녀, 여류시인,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운명이었을 듯한 느낌이 옵니다. 다른 길을 갈 수 없는….

그랬지요, 부친은 저를 시집보냈지만 남편이 죽는 바람에 얼마 못가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이미 시에 재능 있음을 알만한 이들은 알고 있었지요.

-아무리 재능을 타고 나도 후천적 개발이 필요한데, 드문 기회를 운 좋게 잡으셨군요.

부친이 제 재능을 알아보셨지요. 어느 순간 돌출되어, 부친이 방치할 수 없다 판단하셨나 봐요. 제게 글을 가르치셨어요. 잘 됐다든지, 참 좋다는 게 아닌 서글픈 듯,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제가 시를 지어 부르면 부친은 놀라고, 당황하시는 것 같았어요.

-시를 많이 짓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남편을 여의고 친정에 돌아왔을 때, 부친이 옥천군수셨는데 시문에 명성이 있으니 어느 날 당시 시문으로 유명한 분들이 오셨지요. 그날 술자리가 길어지자 부친이 저를 불러 시를 짓게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분들이 제 시를 듣고 놀라는 것 같았어요, 그 후로 소문이 퍼졌고, 시 지을 일이 자주 생겼지요.

-그때 그곳에 계셨던 이들이 어떤 분들인지 기억나세요?

나중에 부친께 들으니, 서애, 송강, 백사, 운강 그런 분들이라고 하셨어요. 그날 강한 인상으로 내 인생에 깊게 얽힐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분이 운강(雲江) 조원(趙瑗)님이었어요.

-대단한 분들이긴 했네요. 그런데 타고난 시재가 재앙이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그 모임이 있은 후, 그분 생각이 잊히지 않아, 한양으로 가서 시인 묵객들이 드나드는 작은 공간을 냈어요. 시에 대한 허기를 채우려는 제 욕심의 발로였겠지요.

-그 뜻을 이루시고, 사업도 잘 되었나요?

그렇다고 해야지요, 하지만 제 바람은 다시 운강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제게는 그분뿐이었으니까요.

-뜻을 이루셨나요?

그런 셈이지요. 그 분을 만나 첩이 되고 그분의 임지에 함께 가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자주 제가 지은 시가 너무 많은 입들을 거치고 노래가 되어 길거리를 채우니 운강이 수시로 저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시 때문에, 그것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膾炙)되어 어려움을 겪다니요….

많은 이들이 운강을 시기했어요. 왕의 총애가 너무 컸었나 봐요. 시는 해석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으니 트집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어요. 그분은 저를 들이며 시와 자신 중 택일하라 했고 저는 의지(意志)로 그분을 택했지만 시가 버려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재앙이라 부를 결정적 사건이 있었나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송사에 휘말린 이가 있었는데, 그 부인이 제게 와 사정을 했어요. 그분에게 호소해달라는 것을 제가 시를 지어 돌려보냈어요. 그 시로 사건이 해결되었는데,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이제 송사에도 관여하는가 하고 노발대발해 제가 쫓겨나게 되고 그 후로 걸인처럼 광인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했지요. 제 시와 삶이 중국까지 알려졌지만 결국 시재는 제게 한이요 재앙이었던 셈이지요.

-자신의 시가 중국에까지 알려진 것은 어떻게 아셨나요?

저 세상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돼요. 한 서린 저는 제가 지은 시를 몸에 두르고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는데, 운명이었던지 중국 선비에게 발견되어 그가 제 시를 책으로 엮어 보관하고 있었다 해요. 저는 재주 없이 평범한 게 행복이라 생각해요.

-오늘 특이한 분을 만났습니다. 평범함이 행복이라 합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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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