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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꿈인지 생시인지 애매하다. 내가 군대생활을 했던 파주 어디라고 했다. 어둠이 깔리는 초저녁 봉분들이 많은 숲속, 어느 비석 뒤에 몸을 가리고 있던 여인이 나타났다. 갑작스럽고 당황되어 물었다. 누구신지요?

"저는 이름은 없고 성은 홍(洪)씨에 나이는 서른여섯, 이 비(碑)의 주인공이고 혼령입니다."

-그럼, 지금 내가 혼령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요, 당황스럽네요? 무슨 사연이 있나요,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시니. 혹시 성함이…?

"홍 씨에 서른여섯, 이름은 없다고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홍 씨 여인, 아니 홍 씨 아가씨, 홍랑(洪娘)이라 하면 되겠네요.

"다들 그렇게 불렀어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다들 저를 대단하다 했지요. 시서화 악기 노래 춤 미모…. 아이고, 제가 흥분했네요."

-아아, 그럼 조선조 여류시인 홍랑이세요? 비석에도 '시인 홍랑지묘'라 되어 있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이 많은 봉분들은 문중 선조(先祖)들이신가요?

"말하자면 길어요. 여기는 해주(海州) 최씨(崔氏)의 종중 묘원이지요. 제가 사랑했던 이가 해주 최 씨인 멋쟁이였어요. 저는 정실부인이 아니라. 그런 걸로 는 별 관계가 없는 기생이었지요."

-사람은 태어난 곳도 중요하지만 묻힌 곳은 더 중요한데 어떻게 여기에…?

"스스로 말하기 그렇지만 신분을 뛰어넘는, 짧게 만나 서로 죽고 못 사는, 영 혼 육을 다해 사랑했고 그걸 인정받은 거지요."

-언제 몇 살 때 서로 만난 겁니까?

"함경도 경성에 절도사 보좌관으로 오신 걸 처음 뵈었는데 그분은 서른넷, 저는 열여섯이었습니다. 나이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저는 그분의 시(詩)와 인간적 매력에 그분은 제 시와 노래에 서로 빠져 헤어나지 못했지요."

-그대는 이별시로 유명한데 서로 헤어진 때가 있었던 건가요?

"경성에서 6개월 계시다 한양으로 가셨어요. 반 년 간의 운명적 사랑으로 생살을 찢는 듯한 이별을 했지요. 더 이상 못가는 함관령(咸關嶺)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지요. 그분도 헤어지고 병이 나 꼬박 일 년을 앓았고 법 을 어겨 제가 남장을 하고 한양에 가서 그분을 다시 살렸어요."

-그 후론 함께 행복했나요?

"그 일로 그분은 파직을 당했어요. 명분은 이것저것 그럴싸했지만 동인 서인 당파싸움에 희생된 거지요. 저는 다시 함경도로 돌아가야만 했고요."

-그럼 두 분은 언제 다시 만나게 되었나요?

"그 후로 그분은 변방의 한직(閑職)으로 떠돌다 객사(客死)하셨어요. 제게는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지요. 너무 슬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다시 먼 길을 달려 그분 무덤을 찾아 3년 시묘(侍墓)살이를 했어요. 그때 남정네들과 소문 이 두려워 자해(自害)해 얼굴에 상처를 내고 세수도 목욕도 하지 않고 지냈어 요. 시묘살이 마치고는 그 곳에서 죽으려 했어요. 삶에 의미가 없었으니까요."

-아주 지독(至毒)한 사랑을 하셨군요. 지고지순(至高至純)하기도 하고요. 그런 데 죽으려 했다는 것은 죽지 못했다는 말 아닌가요?

"그래요. 내 운명이 사나워 죽을 수도 없었어요. 그분이 남기신 주옥같은 시문(詩文)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걸 제가 가지고 있었어요. 반드시 문중에 그걸 전해 드려야 했는데 임진란이 난거지요. 그분 일가들이 피란을 가셔서 내 목숨을 걸고 그분의 작품을 지켜야 했어요."

-그걸 지켜내고 끝내는 문중에 전해 드렸나요?

"마지막 제 할 일로 알고 목숨 걸고 그 일을 해냈어요. 그걸 전하고 그분 무덤에 가서 절하고 삶을 마감했지요. 내 나이 열여섯에 그분을 만나고 스물여섯에 그분이 죽고 서른여섯쯤에 저도 그분 곁에 온 거지요."

-여기에 묻히고 묘비가 서는 건 어렵지 않았나요?

"문중 분들이 논의를 하셨겠지요, 제가 본부인이 아니니 합장은 엄두도 못 내 고 그분들 합장묘 아래 '시인 홍랑지묘'라는 이름으로 묻히고 족보에도 오르고 매년 기림 받고 있어요."

운명처럼 지독한 사랑에 빠져 살고 죽은 여 시인 홍랑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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