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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755년 말의 어느 날 안록산의 난을 맞아 섬주에서 동관으로 옮긴 군영에 머물고 있는 고선지 장군을 만납니다. 난감한 상황에 짧게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많이 심란하시죠?

"그래요, 내 생애 가장 초라한 처지 같아. 변변히 접대도 못하네요."

-마음 쓰지 마세요. 장군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그냥 오십대 후반이라고 해둬요. 많은 시련을 겪었어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만 같아."

-장군의 정체성은 뭔가요? 국적은 어딥니까?

"평생을 앓아온 내 고질병(痼疾病)이야. 밖에서야 알아주는 당나라 장군이지 만 안에선 간단치가 않아. 당나라 장수지만 번장(蕃將)이라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고구려인이라기엔 나라가 없으니 말이 안 돼. 내 조상의 나라를 패망시킨 당나라니 더 갈피잡기 어려워."

-최근 들어 두 번 패하긴 했지만 현 상황에서 장군을 능가할 당나라 장수를 찾기는 어렵지 않나요?

"뭐라 말하기 어렵네, 장수의 운명은 거의 정해져 있어. 평화로울 때는 변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궁성에 들면 문신들에게 무시당하고, 전시에는 싸움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다 죽든지…, 연승(連勝)해도 위험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문신들이 가만히 안 두거든. 나라라는 게 외적이 쳐들어오지 않으면 타국을 쳐들어가고 그것도 아니면 내란이 일어나곤 하지. 나라가 위태로우면 불러 내니 언젠가는 지는 게, 무장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지."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으시겠죠?

"사십대에는 거칠 게 없었지. 기마병 이천으로 달해부를 쓸어버릴 때는 참 통쾌했었어. 토번을 칠 때도 겁날게 없었지. 평생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 더라고(지그시 눈을 감고 당시의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장군에게서 탈라스전투를 빼놓을 순 없지요. 가슴 아픈 전투긴 해도.

"지난 일을 돌이킬 순 없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야. 카르룩의 배신이 뼈아팠어. 그들의 행태를 전혀 예상 못한 내 불찰이지.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어, 유구무언(有口無言)이지…."

-승패야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잖아요?

"패전의 상처가 너무 커. 잊을 수도 없고 꿈마저 시달려."

-당나라 사정도 늘 좋은 건 아니었죠? 어진 현종이 양귀비에게 심하게 휘둘려 경국지색이란 말이 다 나왔잖아요?

"그래도 현종황제는 내게 잘 해주셨어. 어떤 나라도 최고지도자가 한눈을 팔고 여인에게 휘둘리면 방법이 없지."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요?

"좋은 쪽으로는 아버지 고사계(高舍鷄) 장군과 봉상청(封常青)이지. 부친은 내 정신적 지주시고, 봉상청은 등용된 후로 날 실망시킨 적이 없어. 이번 난에서 패했는데 그건 그가 지휘관보다는 참모에 어울린다는 거지."

-안 좋은 방향으로 잊을 수 없는 이는 누군가요?

"부몽영찰(夫蒙靈察)이 붙여줘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닌 감군(監軍) 변영성(邊令誠)이지. 그는 한족(漢族)이 아닌 나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자기 자존심을 세우려 했고 나는 그의 허세가 싫었어. 서로 잘 안 맞았지. 그는 전황보고를 할 때 늘 나를 깎아내리려 했어."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당연하게 여기는 게 대단한 것일 수 있어, 가진 걸 감사해야지. 내 나라가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건지 난 평생 통감하며 살았어. 좋건 싫건 조국이 있다는 건 대단한 거야. 또 인생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 그때그때 대의(大義)를 따라 최선으로 살아야지."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德目)은 뭘까요?

"유능함과 책임감이지."

-짧게 하려 했는데 긴 시간 고마웠습니다. 고선지 장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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