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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식

수필가

-구레나룻이 검고 신장이 꽤 크신 외국분입니다. 누구신지 자신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청주 시민들이 제 얘기를 자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 일이 청주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도 하고요."

-그런 분을 모른다는 게 민망하고 당황스럽습니다만, 그럼 성함이라도 알려 주시죠.

"제 이름은 '빅토르에밀마리조제프 콜랭 드 플랑시'입니다. 보통 '빅토르 콜랭' 또는 '콜랭 드 플랑시'라고 부르지요. 2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 동아시아를 비롯해 주로 외교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럼 혹시 "직지"와 관련 있는 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직지를 프랑스로 가져가 모교에 기증했는데, 그게 국립박물관에 수집 소장되어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직지는 청주의 얼굴입니다. 그 일에 초석을 놓으신 분이시군요. 청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직지를 소장하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나요.

"제가 책을 비롯해 미술품, 도자기 같은 옛 물건들을 좋아했어요. 책이라면 다 읽진 못해도 사들였습니다. 조선에 두 번째 온 후, 구입한 간행 연대가 500년이 넘어 관심이 가던 '뜻밖의 책'이었지요."

-여러 곳에 근무하셨으니 다른 나라 물건도 많았겠어요.

"조선 물건이 유독 많았어요. 제 나이 육십 조금 못 되어 소장품 경매가 있었는데, 700여 종이 조선 것으로 전체의 팔 할쯤 되었지요."

-조선 것들을 그렇게 많이 모은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제 아내가 조선 여인이었어요. 아주 사랑스러운 여인이었지요. 궁중 무희였고 노래도 아주 잘했어요. 그런 아내의 나라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몇몇 유명 소설로 기록된 '리심' 혹은 '리진'인가 하는 그 분의 부군 되시는 분인가요.

"그렇습니다. 그 대단한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엄청난 로맨스의 주인공이시군요. 같은 남성으로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단 생각도 듭니다.

"항상 아내가 보고 싶고 그리워요. 무척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요."

-아내분이 다시 궁중무희가 되어 선생과 격리돼 슬퍼하다 궁중공연 중에 독극물을 삼키고 생을 마감했다는 걸 어디선가 읽은듯한데 사실인가요.

"이제 와 할 말은 아니지만 저도 사정이 있었어요. 외교관에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건 자국의 이익입니다."

-사랑보다도 국익이 앞서는 것인가요.

"명확하게 뭐라 해야 할지 모르지만 전 그렇게 판단했어요."

-선생 개인으로서 청주에 대한 애정은 어땠나요.

"솔직히 잘 몰랐어요. 제가 구입해 가져갔던 "직지"가 이토록 대단한 보물이 될 줄도 전혀 몰랐어요. 때로는 뜻밖의 일들이 벌어지지만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모두에게 아주 잘 된 일이지요."

-당시의 조선에 대해 한 마디 평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계사적으로 불행한 시대였어요. 그 시대를 산다는 게 고통이었지요."

-선생 개인으로서는 행복했나요.

"불행한 시대에 행복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달콤 쌉쌀했습니다. 동시대인으로서 죄스러움을 느껴요."

-선생께 조선은 어떤 의미였나요.

"제 생애 황금기를 보낸 곳이며, 사랑하는 여인의 나라였어요. 최선을 다하려 애쓴 시기였고 근무지였어요."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잘 모르긴 해도 '반려 무엇'보다 사람과 어울려 살라고 하고 싶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주시민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귀한 것'을 '귀하게' 대하고, '무심'하게 소처럼 '우직하게' 살다보면 뜻밖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직지가 보존되어 청주의 상징이 되는데 단단히 한 몫 하신 조선 말 주한프랑스영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를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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