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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12.16 14:18:45
  • 최종수정2021.12.16 14:18:45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지금은 퇴직해 일에서 손을 놓았지만 한창 일할 때 일화이다. 가가호호 방문해 초, 중, 고 학생들에게 자기주도 학습에 대한 필요성, 플립러닝과 미래시제형 교육은 어떠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인천에 있는 영종도에 방문 약속이 잡혔다. 물론 학부형 요청에 의해 방문하는 길이었다. 영종도에 도착해 지도를 보며 약속된 집에 도착해보니 약속한 당사자는 보이지 않고 손님들만 가득했다. 학생 또한 없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다음 집도 같은 상황이었다.

방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침까지 거르며, 허둥지둥 달려왔건만 상대는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지키지 않았다. 섭섭함과 서운함 실망감을 뒤로하고 되돌아와야 했다. 들어갈 땐 도선을 이용했지만 나올 때 신공항 전용 다리를 통해 돌아왔다.

시원하게 탁 트인 신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약속이라는 단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래된 벗과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호젓한 가야사에서 벗을 만난 김장생의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과 오늘일이 겹쳐지면서 1970년대 버스 승강장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邂逅伽倻寺 行裝帶雨痕(해후가야사 행장대우흔) / 相逢方一笑 相對却忘言(상봉방일소 상대각망언)

가야사 절에서 우연히 만나니, 행장이 비에 젖은 흔적일세 / 서로 만나 반가운 웃음 한바탕 웃고 나니, 서로 바라보며 할 말을 잊었구려

- 金長生(김장생, 1548-1631), '伽山逢尹正卿(가산봉윤정경)'

김장생은 가야산에서 보고 싶은 오래된 벗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설레는 길을 나섰다. 일편단심 푸르른 소나무는 가야산 가는 길 양편으로 늘어서 청청한 두 팔 뻗어 반갑다 손을 흔들고 있다. 빨리 벗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 재촉하니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발길을 잡는다. 그러자 옷이 빗방울에 흠뻑 젖었다.

흠뻑 젖은 몸으로 손발을 흔들며, 허위허위 도착해 들어서자 벗도 흠뻑 젖어 산문을 들어선다. 빗물에 젖었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두 손을 잡고 서로 활짝 웃는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두 손만 꼬옥 잡고 흔들 뿐이다.

아무튼 1970년대 승강장 모습은 어떤 승강장은 줄을 잘 서 있고 어떤 승강장은 줄을 잘 서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유는 줄을 잘 서는 승강장은 버스가 승강장 표지판에 정확하게 들어서는 승강장이었고 줄을 서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승강장은 들쭉날쭉 아무 곳이나 세우고 있는 승강장이었다.

버스가 아무 곳에나 들쭉날쭉 섰기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차를 쫓아다니며 혼란에 빠진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으니 계획적으로 버스를 탈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서로 '약속'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쯤 기다려야 내 순서가 온다는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왕좌왕했던 것이다. 약속이 안 지켜지니 예측을 할 수 없고 예측 할 수 없으니 기다릴 수 없어 우왕좌왕 했던 것이다.

지금은 선진국답게 시민의식과 질서의식도 세계최고이며, 도착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어 안절부절 기다릴 이유도 없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닐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기다리다 탈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땐 예측할 수 없으니 '혼란' 상황에 빠지게 된다. '혼란'은 사회발전을 아득한 옛날로 후퇴시키고 만다. 기본적인 '줄서기'를 잘하기 위해선 운전하는 사람과 줄을 서는 사람과 정확한 약속이 필요 한 것과 같이 어느 한 쪽만 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꼭 지키는 사회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이제는 신용과 감동이 우선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코로나19로 어렵지만 김장생의 '가산봉윤정경'과 같이 오래된 벗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켜 만나는 정이 가득한 사회가 빨리 회복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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