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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최근 동해안 여행을 하면서 젊은 여인을 보고,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았다. 20여 년 전 촬영했던 필자 동영상 강의를 보면서 필자에게도 젊음과,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음을 확인해봤다.

전광석화!(電光石火)는 번갯불이나 부싯돌이 부딪혀 불이 번쩍거리는 것과 같이 매우 짧은 시간이나 매우 재빠른 움직임을 말한다. 전광석화같이 빛이 흘러 들어왔다 찰나 순간 머물다 사라져가고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이미 도착하여 먼 과거로 흘러가버린 빛도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이 시간대를 조용히 흘러가는 꽃과 사람들, 동물과 나무들을 비추는 빛도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한 시절이 있음을 빛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빛에 등이 있던가? 아무튼 빛 등판에 올라타 납작 엎드려 광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 중 문득 오래전 보았던 불교 의식인 다비식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소리에 필자는 "스님 다시는 돌아오지 마세요~!!"라며, 소리쳤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아직까지도 탐진치로 살아가는 필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찰나 전광석화와 같은 시간 속에 生滅(생멸)하는 생명들은 단지 소멸해갈 뿐이다. 魂魄(혼백)으로 이루어진(일원론) 인간 또한 삶이 다하면 혼은 백에서 빠져나와 소멸해간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소멸한다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유한 혼백은 유전자(DNA)를 통해 자손에게 전달되어 이어져가기 때문에 완전한 소멸은 아닐 것이다. 우리 전통 유교에서 부모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음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소멸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에 빠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탐진치는 욕심(貪慾, 탐욕)·성냄(瞋恚, 진에)·어리석음(愚癡, 우치)을 말한다.

탐욕은 본능에 대한 욕구를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 구하는 것이며, 진에는 자신과 뜻에 맞지 않을 때 생기는 증오심, 노여움이며, 우치는 탐욕과 진에에 가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탐진치 삼독을 새기면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탐욕이다. 지나친 욕심과 욕망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부작용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인간 욕심과 욕망은 끝없이 뻗어 나간다. 이러한 마음은 지혜를 어둡게 하고 악에 대한 근원이 됨으로, 삼독심이라 하는데 필자는 이 모습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근본이치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를 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성냄은 탐욕과 욕망이 결핍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다. 성내면 사리분별을 할 수 없고 이로 인해 결국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또한 식, 색, 재물, 명예, 수면욕 등 5욕도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탐욕과 욕망을 없애는 것인데 쉽지 않다. 욕심을 덜 가지려고 노력해야할 것이며, 적절하게 통제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으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성내지 않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지구 여행자들은 다시 지구를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만 그런가?

사는 일이 참혹해서? 아니면 그것이 그것이어서? 쓴맛 단맛 신맛을 맛보아서? 이생 경험은 잘들 하셨는지? 즐거운 일, 슬픈 일도 다 한 개념일 뿐일 텐데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다들 무사하신지? 아마 비슷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기에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필자 스스로 필자를 책임지며 살아왔고 살아가야할 것이다. 이젠 즐기며, 놀다 가자, 산천초목아, 뭐 하느냐! 젊고 아름다웠던 시간 지나고 보니 찰나 전광석화가 실감난다. 단지 소멸해갈 뿐이라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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