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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0.22 14:43:35
  • 최종수정2023.10.22 14:43:35

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늦은 오후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산길을 걸어가자니 장주 호접몽이 생각났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운무사이로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가을 풍경에 취할 겨를 없이 밀려오는 것은, 산 속에 대책 없이 버려진 애완 토끼 마냥 전망 없는 막막한 일상들이다.

하염없이 바람타고 떨어지는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모두 허망한 꿈임을 알 것 같다. 전망 없음은 불안이 되고, 대상이 구체적으로 턱 버티고 있으면 공포가 된다. 그 대상은 춥고 배고픔 아니었을까? 불안과 공포에 하얗게 변한 얼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속에 필자 얼굴도 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죽어가는 시간까지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이를 대지 상상력이라 한다. 먹이 찾아 대지를 방황했던 필자 모습이 떨어지는 낙엽 같아 처연하다.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그대 모습만 떠올라/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 내 온 마음을 사로잡네

- 정태춘 박은옥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

처연해진 필자 모습을 보고 Hug를 생각해 본다. 허그는 상대를 안아주는 행위로, 사랑과 애정을 표시할 때, 서로 위로 해줄 때, 꼭 필요한 행위이다. 식어버린 몸에 걸친 살고자했던 뜨거운 마음이 "깊은 밤에도 잠 못 들"며, "그대 모습만 떠오르는" 가을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가을 가랑비에 젖고, 겨울비와 눈에도 젖어간다. 젖은 몸은 무겁다. 무거워진 몸에 "사랑은 이렇게 말없이 와서/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방향 잃은 슬픔이 커져 가고 있을 때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나도 모르게 어느새/사랑하게"된 가을.

고요히 잡아주는 손은 비단결처럼 고운 손이다. 포옹을 통해 파편화된 내면에 있는 상처가 치유되듯 따뜻하게 잡아주는 손도 치유능력이 있다. 유학 수양론은 측은지심·수오지심·사양지심·시비지심 등 네 가지 마음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사단이란 네 가지 단서, 즉 네 가지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측은지심은 타인에 대한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은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어려울 때 손잡아주는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다. 측은지심은 어린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누구나 아무 조건 없이 그 아이를 끌어안고 구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말한다. 소박하고 순수한 자발적인 행위는 착한 인간 본성에서 나옴을 알 수 있다.

어려울 때 가슴을 안아주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은 소나무와 잣나무 푸르름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혼란한 시간을 보내며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을 때 어느 날 말없이 다가와 내손을 덥석 잡으며 힘내라던 손. 그 손으로 그동안 뭉쳐 굳어있던 근육들을 풀어주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손.

그 손으로 밥상을 차려주고, 할머니 쌈지주머니에서 나왔던 박하사탕처럼 향기 좋은 커피 한잔을 주고 가는 손. 치킨 집으로 불러내 나에게 더 많이 먹으라며, 닭고기를 입에 넣어주면서 시원한 맥주를 권하는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사슴 눈처럼 맑고, 황소 눈처럼 깊은 눈빛으로 "내 온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은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먼저 손 잡아주고, 먼저 다가가 안아주었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코로나19로, 폭우로, 폭염과 태풍으로 어수선한 2023년이 막바지로 향해 가고 있다.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보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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