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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필자는 동반자와 함께 살아오면서 간직했던 테마들이 한순간 사라져 버린 경험을 했다. 이것들은 수많은 기억을 만들어 냈고 그 기억은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주되면서 "문(門)간" 밖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났지만 눈을 뜨면 아무런 의미 없는 컴퓨터를 켜고, 출근하고, 출강 나가고, 인식할 대상 없는 취함과 함께 뒹굴고 있다.

이렇게 시간마다 부딪치면서 만들어 내는 복합적인 필자 감정을 정리하고 이제는 다른 길을 가야겠기에 최근 누이라 호칭하는 여인이 있는 SNS 대화방 "문(門)간"을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다.

"문(門)간"은 대문이나 중문(重門) 등 출입문이 있는 곳에 있으며, 대문을 통해 외부로 열려있다. 외부와 연결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작용하는 "문(門)간"은 내부를 외부세계로, 외부세계를 내부로 끌어들여 서로를 보여줄 수 있도록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밖으로 향한 열림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만든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님, 또는 神을 향해 모든 것을 개방한 문으로, 오직 님이나 신에게 향하는 기다림에 대한 상징으로 "문(門)간"이다. 이러한 "문(門)간"에 대한 노래는 김소월 「나의 집」이라는 시가 있다.

- 전략-

하이얀여울턱에 날은저물때./ 나는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새가 울며지새는 그늘로/ 세상은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나의 집」 부분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은 "하이얀여울턱에 날은저물때"를 지나 "새벽새가 울며지새는" 기다림이며, "번쩍이며오는 아침부터" 시작하여 인적 없는 "저물때"까지 다시 시작되는 기다림이다. 필자는 이러한 기다림을 찾기 위해 SNS 대화방 "문(門)간"을 넘어가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호칭을 오라버니와 누이로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애착이다. 애착은 인간관계에서 근본으로 작용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애착이란 개인과 애착 대상(보통 양육자) 간 존재하는 애정 유대를 의미한다. 이러한 유대는 두 성인 간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아이와 양육자 간 형성되는 안정과 안전, 생존에 대한 욕구를 기초로 한다.

생물학적 목표는 생존이고, 심리학적 목표는 안정이다. 이 두 가지가 잘 작동되기 위해서는 유대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사람을 만나 신뢰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안정 애착이라 하며, 버림받거나 거부당해 걱정과 불안에 빠지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또는 관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불안 애착이 있다.

안정 애착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불안 애착이었다. 그러던 중 "문(門)간"을 넘어서면서부터 불안함이 많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져 갈 때, 애써 기쁘게 하거나 거짓 미소를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혼자 있을 때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는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예전 모습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바뀌어 편안하게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때는 상대방이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에 가치를 부여했지만, 이젠 유대관계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됨의 당혹감은 모든 것을 싫어지게 만들었고,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이 들 때 눈치채지 못하게 따뜻함으로 유대를 허용한 여인에게 감사드린다.

따듯함을 갚을 수 있는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마음으로 부담 없이 보내는, 작은 따스함이지만 차가워진 마음들이 조금이나마 따듯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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