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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나에게도 어머니가 계셨다. 나를 낳아 지금까지 키워주고 염려하고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어머니. 자주 찾아 뵈어야 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럴 때면 왜 오지 않느냐며 기다리면서 철들라며 날 부르는 어머니가 계셨다. 가을, 봄여름 내내 푸르던 낙엽들이 바람에 힘없이 떨어져 길에 내려앉을 때 무침 게장을 사다 드렸더니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루는 홍시를 사 드렸더니 한입 베어드시고 내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니는 이제 내 곁에 안 계신다. "네가 잘사는 것을 봐야 내가 죽을 텐데" 하시면서 잘 살아가길 간절히 빌고 빌었던 어머니.

하지만 눈뜨라고 철들라고 날 부르는 어머니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어디선가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바흐 칸타타)가 흘러나온다. 평소 가슴 속에 뜨겁게 계시는 어머니가 나직하게 읊조리던 노래이다.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318장)라는 찬송가를 조용히 불러본다.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수주 변영로(卞榮魯, 1898~1961), 「봄비」 전문.

늦가을, 바람 많이 불고 굳게 닫힌 철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밤새 가을비가 내렸다. 곧 심한 추위가 북에서부터 내려올 것이다. 이럴 때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한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나를 기다리면서 철들라며 부르시던 어머니가 보고 싶고, 나를 기다렸듯 나도 어머니가 기다려진다. 세월은 빠르게도 돌아 가신지 벌써 2개월여 되었다.

겨울 지나고 봄날 되어 비 내리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아 벌써부터 봄을 기다려본다.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닐 듯, 시간이 느리게 흐르며 조금 더 우리 곁에 계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어느 날 홀연히 왔던 곳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직 목소리 생생한데, "노래(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내리는 봄비라 할지라도 혹시 그 속에 어머니 모습이 있을까 기다려본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어머니가 들어와 계시니 나에게 더는 "잃은 것 없"음을 알겠다.

계실 때 좀 더 잘 살았어야 했는데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아픈 나의 가슴을 어찌해야 하나. 이제 다시는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이 되었으니. 늦가을 겨울바람 세차게 불어오니 벌써부터 봄이 기다려지고 봄비 내리는 날이 그리워진다.

살아 계실 때 잘 살아야 하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 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언제 잘 살 수 있을 것이며, 눈 뜨고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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