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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소설을 쓰자면 몇 백 권을 써도 모자랄 한 우주가 사라진다. 죽음이 그렇다. 살아오면서 죽음에 무덤덤했던 필자에게 열대야로 뒤척이던 새벽,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눈물 많고, 웃음 많고, 시심 많던 후배 전화였다.

5년 전 관악산 관음사를 돌면서 후배는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에 생겼다며, 멀리 떠났다. 종종 SNS에 올라오는 소식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배 제 아내가 떠났어요!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하여 5명 생명을 살렸습니다." 죽음이란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탄생이 있다면 소멸은 반드시 찾아온다. 생(生)과 멸(滅)은 함께 다닌다. 살아있는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이는 우주 운행 규칙이다.

하지만 온기 사라진 그리움을 어찌 버티며 살아갈까? 필자에게도 애절하고 슬픈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아픔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도 경험했다. 가까이 지내던 모 교수도 아내가 2년여 전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2년이 지나니 조금 견딜 것 같다고 했다.

곤이젓, 창란젓, 아가미젓/ 저게 창자와 벌름거리던 숨구멍과/ 대구의 생식기였단 말이지/ 내 끊어진 애와/ 벙어리 가슴과/ 텅 빈 아기집도 들어내/ 한 말 굵은 소금에 절여 볼까/ 컴컴한 광 속에서/ 한 오백 년 푹 삭아 볼까/ 마늘, 생강, 고춧가루/ 듬뿍 뿌려 맛깔스레 무쳐 볼까/ 그대 혀 끝에/ 올려 진다면/ 그게 나인 줄도 모르고/ 삼켜진다면/ 그리운 그대 속내/ 알아보는 거야/ 원 없이 들여다보는 거야

― 강기원, 「절여진 슬픔」 전문

그리움이란 애절하고 슬프고 눈물 나는 기다림이다. 하늘에 그림을 얼마나 많이 그렸을까· 하지만 님은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 차라리 삭은 젓갈과 같이 "그대 혀 끝에/올려 진다면" 좋겠다고 독백한다.

흔적 없이 사라진 허망한 시간 속에 대답 없는 그리움은 쌓여가고, 침묵 속에서 "곤이젓, 창란젓, 아가미젓"이 소금에 절여져 앞에 놓여있다. 이것들은 "그대"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다 지쳐 "끊어진 애"로, "벙어리 가슴"으로, "텅 빈 아기집"으로 말을 걸어오고 있다. "한 오백년 푹 삭"인 젓갈 되어, "마늘, 생강, 고춧가루"가 들어간 반찬으로 앞에 놓여있다.

"그게 나인 줄도 모르고/삼켜진다면" 아니 삼켜질 수 있다면, 삼켜진 나는 그대 속마음에 들어가 "그리운 그대 속내/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 없다.

그리움, 보고 싶음이 하늘에 그림을 그려놓고 "원 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 그래서 보고 싶음은 그리움이다. "벙어리 가슴과/텅 빈 아기집"으로 들어가 "원 없이 들여다보"고 싶은 그리움, 그리움이 슬픔이 되는 순간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그리워해본 사람은 안다. 침묵인 그대,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초록 푸르름 가득하지만 그리움은 "한 오백 년 푹 삭"은 "절여진 슬픔"으로 밥상 앞에 반찬으로 자리하고 있다. 쉼 없는 시간 속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한한 시간 속에 홀로 살아내다 홀로 떠나는 길, 그러다 마지막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먹여야 하는 사건. 이 사건은 끝내 "그대 속내 알아보는" 사건으로, 사랑한다면 슬픔을 넘어, 유한성을 넘어 "곤이젓, 창란젓, 아가미젓"처럼 "한 오백 년 푹 삭"으면서 계속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슬픔을 안겨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로했던 새, 물고기, 하늘, 바다, 강, 대지 등은 그대로인데, 사랑했던 말들이 어두운 밤 속으로, 어느 외진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을 "그게 나인 줄도 모르고/삼켜진다"에서 찾아본다. 인연에 대한 본바탕, 본질을 잃지 않고 잘 극복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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