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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술

인문학당 아르케 교수

추위 견딘 매화 꽃봉오리가 병들어 피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차가운 겨울바람 견디고 따스한 봄비 맞아 일어섰지만 예전처럼 아름답게 꽃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이다.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었다."는 과거형만 남았다.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인 아침, 동이 터오자 문득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봤다. 경제력을 보고 사랑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만 번 다시 태어나 이 세상에 온다 해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만날 수 없다. 때문에 스님이자 시인인 산티데바는 "수천 생을 반복한다 해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 그러니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입보리행론)고 했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이내 푸른 이파리가 살랑거리는 여름이 되었다. 세상이 온통 생명 가득한 초록빛으로 넘실거리자 사람에 대한 실망이 희망으로, 희망은 기쁨으로 이 기쁨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감사는 겨우내 앙상하게 말라있다 봄 되면 소생하여 말없이 소멸에 대한 의미를 전해주고 있는 나무를 보고 알았다. 또한 자연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들어 사랑이 깊으면 실망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사랑을 상실하면 좌절과 절망에 빠지지만 지극한 사랑은 희망과 기쁨을 준다. 사랑은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랑에게 그만두라고 강요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산티데바는 "후회 없이 사랑하라."고 했을 것이다.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 새롭게 들려오는 아침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하고 지극히 귀중하다.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사랑은 소중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전문

그렇다 사랑한다면 마주 보고 있어도, 서로 손을 잡고 있어도,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그대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리움에 목매이다 나타난 그대, 금방 보았지만 또 보고 싶어지는 그대, 그대가 옆에 있어 기쁘고, 이 기쁨은 슬픔이 되기도 한다. 더없이 행복 하다가 아프기도 한다.

내 안에 들어와 중심이 되어버린 그대, 나를 뒤흔드는 그대는 누구신가요. 여기서 그대는 신(神)이 아닐까? 진리를 깨달은 불성 같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려는 보리심이기도 한 그대, 자나 깨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그대에게 향하는 사랑은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들어 은밀한 꿈을 꾸게 한다.

이렇듯 그리운 존재는 매우 간절한 존재이다. 사람 속에 들어가 사랑하면서, 삶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면서 스스로 꽃다운 시간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울 수 있는 것은 순수함이며, 깨끗하고 감미로운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리움은 희망으로,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리움 이면엔 희망이 있으며, 희망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해준다.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 사람은 향기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세상 아름다움은 사랑에서 시작된다. 후회 없는 사랑을 하자. 사랑은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한다. 필자 또한 축복 속에서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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