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늦가을 날씨가 너무 좋다! 참아내기 어려웠던 폭염(暴炎)으로 여름을 보내고 나니 이렇게 좋은 가을 날씨가 감동을 안겨줘 잡아두고 싶은 만추(晩秋)의 계절이다. 파란 가을 하늘아래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 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돼 너무 아름답다. 잎을 떨 군 감나무엔 터질 듯 빨간 홍시가 먹음직스럽다. 일찍 수확한 감나무 끝엔 까치밥만 덩그렇게 남아있다. 자연의 선물을 동물과 함께 나눠먹는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일찍이 선조들로부터 보고 배우며 실천하고 있다.

 시골에 계시는 노모를 찾아가니 텃밭에서 가꾼 호박을 수확해 놓고 아들딸들에게 나눠주려고 하신다. 뒷밭에 심은 총각(總角)무도 된서리에 얼지 않도록 덮어놓으셨다. 넓적한 소쿠리에는 대추와 감을 담장에 올려놓고 가을 햇볕에 말리는 풍경은 풍요로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가뭄이 심해서 고구마 알이 굵게 영글지 못하고 자잘한 것들을 쪄서 가을볕에 말린 고구마말랭이를 집어 먹으니 꼬들꼬들한 맛이 주전부리 간식으로 너무 좋다. 이웃에 사는 사촌동생은 김장을 담그느라 분주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시골 마당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웃음소리가 아이들이 많았던 옛날의 농촌풍경과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가을걷이도 거의 마무리 돼 월동준비를 하는 모습이 농촌의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사과를 한창 수확하고 있고 도로 옆에서 사과를 팔고 있어 한보따리 샀다. 들깨 타작하는 소리, 무를 뽑는 아낙네들, 쾌청한 가을 날씨에 노란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던 들판은 벼 수확을 하고나니 썰렁해 보였다. 지금처럼 기계화가 되기 전의 농사는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예전에 중학교 다닐 때 하교하고 돌아오면 일손이 모자라 달밤에 논에 세워둔 볏단을 지게로 날랐던 일이 생각났다. 마당에 볏가리를 쌓아 놓고 날을 잡아 타작을 했다. 탈곡기를 발로 밟으며 벼 나락을 터는 일은 여러 명이 역할을 맡아 먼지를 뒤집어쓰며 하루 종일해야만 했다.

 요즘은 모내기도 기계로 하고, 콤바인(combine)으로 논에서 잘 말린 벼를 자르면서 탈곡을 한 다음 자루에 담는 일까지 한 번에 마쳐서 손쉽게 농사를 하고 있다. 일손이 많이 필요했던 농촌에서는 들판에서 새참이나 점심을 이웃과 나눠먹으며 정을 나눴던 모습은 보기가 드물게 됐다. 예전엔 아낙네가 집에서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머리에 이고 논밭 길을 걸어가는 모습도 이제는 볼 수 없게 됐다. 요즘은 식당에서 배달을 해준다고 한다. 들밥을 전문으로 해주는 식당까지 생겼다고 한다.

 한낮의 가을날씨가 너무 평온해 차를 몰고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섰다. 충주호가 단풍과 잘 어울리는 월악산을 바라보며 송계계곡입구에 들어서니 잔잔한 호수는 마치 거울 같았다. 아름다운 가을 산이 거꾸로 비친 호수는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만 담아가기가 아쉬워 사진을 찍었다. 봄에는 벚꽃길이 아름답고 여름엔 녹음(綠陰)과 어울리고, 가을의 단풍이 비추는 호수는 절경이 아닐 수 없다. 눈 덮인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는 겨울까지 사계절의 변화를 보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이 안겨주는 선물이 아닌가?

 노란 은행잎 길을 걸을 때면 귀인이 된 느낌이다. 청정계곡이라 자주 찾는 만수계곡을 걸으며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까지 정화가 됐다. 한적한 계곡에 자리 잡은 찻집에 앉아 우수(憂愁)에 젖어본다. 어린 시절의 그리운 친구들도 생각이 나고 주말에 찾아오는 가족들과 귀여운 손자들도 보고 싶어진다. 계곡의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따뜻한 차 한 잔의 향기는 만추의 정감을 잡아두고 싶은 계절이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