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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재

수필가·사회교육강사

휴가철이 되면 출가한 딸들이 손자들을 데리고 자주 찾아온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계곡에 와서 피서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공무원인 둘째 딸이 작성하던 원고를 정리하려고 오래 된 내 노트북을 열고 한참을 기다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이렇게 느린 노트북을 어떻게 사용해요?"오래 쓰다 보니 느려지긴 했지만 나는 그런대로 익숙해 졌는데 딸은 너무 답답해하였다. 보름이 지난 후 저녁 늦게 도착한 둘째 딸은 새 노트북을 사왔다며 식탁에 올려놓았다. "아직 쓸 만한데!"

돈 쓸 일도 많은데 왜? 사왔냐며 걱정의 마음을 표했지만, 새 노트북을 열어보니 너무 좋았다. 그 동안 1주일에 두 강좌를 강의하면서 강의 자료를 수집하고 편집하느라 거의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헌 노트북의 자료들을 새 노트북으로 옮기려하니 자료가 너무 많이 쌓여서 이 작업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마치 이사 다닐 때 짐을 정리하면서 버려지는 것이 너무 많은 것처럼, 필요 없는 자료를 정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버릴 것을 삭제하며 정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사진을 정리했다면 이런 불편이 없었을 텐데……. 그러면서도 지루한 작업에 한 가닥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지난 날 추억을 담은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추억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정년을 앞두고 자녀들과 함께 다녀온 제주도 여행, 생일이나 휴가철에 다녀온 국내 관광지 추억, 아내의 회갑기념으로 아이들이 주선한 하와이 가족여행, 딸들이 보내준 피지, 팔라우 섬 여행, 나의 칠순 기념으로 15명이 다녀온 호주여행! 지금은 부쩍 자란 손자들의 귀여운 어린모습을 보면서 지난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면 몸에서 엔도르핀이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추억어린 사진들은 모두 용량이 큰 외장하드로 옮기고 나머지 자료만 새 PC로 옮기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였다. 필요 없는 자료를 청소했을 뿐인데 마음까지 가볍고 기분이 상쾌하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향교에서 6월부터 개강한 시민정신 함양교육으로 마련 된 강좌인 채근담(菜根譚)과 우수프로그램에 선정된 노자 도덕경(道德經)강의를 하고 있다. 중국 고전의 주된 내용은 마음을 비우고 양보하며 부귀공명보다는 남에게 베풀고 신의를 지키라는 가르침이 주로 많이 나온다. 노자의 사상은 비우고, 버리고,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철학이 현대인에게 감동으로 닥아 옵니다. 수레의 바큇살이 한 곳으로 모여 있지만 바퀴의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돌아가므로 없음(無)을 만나야 쓸모 있게 된다. 그릇을 만드는 것은 빈곳을 얻으려는 것이므로 빈곳을 만나야 그릇이 쓸모 있게 된다. 방을 만드는 까닭은 방의 빈 곳을 쓰려는 것이므로 역시 없음을 만나야 방이 쓸모 있게 된다. 따라서 있음(有)의 유익함은 없음(無)의 쓰임(用)이 있다는 무위(無爲)철학이 도덕경 11장에 있습니다. 바퀴의 쓰임은 가운데의 빈곳이고, 그릇의 쓰임도 빈곳이며, 집은 틀이 아니라 집의 빈곳을 쓰게 되니 빈곳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없음(無)은 있음(有)을 쓸모 있게 해줍니다. 있음은 없음의 작용으로 비로소 중요해집니다. 있음은 없음이 쓰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비우는 것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므로 쓸모는 보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것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비어있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즉 유(有)와 무(無)는 서로 상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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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