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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재

수필가·전 달천초 교장

정년 한지 5년 반이나 지나서 시내 근교에 밭을 하나 마련했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싫어하는 아들이 혼인하여 집을 짓고 살아가게 하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좋은 집터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복토까지 하고 올해는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서 농사일이 너무 힘들어 보여 농사지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집을 지을 형편도 안 되어 시장에서 여러 가지 모종을 사서 심기 시작했습니다. 토마토, 가지, 고추 모를 심고 고구마 싹도 사서 물을 주어가며 심었습니다. 고구마 싹을 심는 날은 주말이라서 아들도 오고 막내딸 가족도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세 살, 여섯 살 손자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돕는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았습니다. 세 살짜리 명균이는 장난감 삽으로 흙장난을 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초보농사꾼들이 많이 하는 들깨를 주로 심었습니다. 노모는 나에게 참깨도 심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참깨 모를 다섯 판이나 사서 심었습니다. 아주 소담스럽게 잘 자랐습니다.

고추와 토마토는 밭에 갈 때 마다 따다 먹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참깨가 쑥쑥 자라 꽃이 많이 피더니 꼬투리가 소담스럽게 영글었습니다. 초보 농사 치고는 잘 가꾸었다고 노모께서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호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오니 농작물들이 몰라보게 많이 자랐습니다. 토마토도 빨갛게 익었고 가지도 아이들 팔뚝만큼 자라서 풋고추와 함께 따다 먹었습니다. 올해는 장마와 태풍이 오지 않아 참깨가 잘되어 수확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예년에 없던 폭염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밭에 나가 참깨를 낫으로 베어 묶었습니다. 먼저 익은 참깨 알이 떨어질세라 돗자리를 깔고 단으로 묶어 통풍이 잘되도록 깻단을 세웠습니다. 온 몸에는 땀이 비 오듯 했습니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은 일하는 보람을 맛보는 달콤한 시간이었습니다.

11시가 가까워지니 온몸은 물에 빠진 것처럼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니 이열치열의 뒷맛이 그렇게 개운 할 수 없었습니다.

농민들이야기를 들으면 농사는 투자 한 것에 비하면 도리어 사서 먹는 편이 더 싸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밭을 갈아 비닐을 씌우는 비용, 퇴비와 비료 값, 농약 값, 모종 사는 돈이 많이 듭니다. 품삯까지 계산에 넣으면 수확한 농산물 보다 투자비용이 많다고 합니다.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 먹는다는 보람 때문에 농사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참깨가 작열하는 햇볕 덕분에 바싹 말랐습니다.

외손자들이 와서 계곡과 수영장을 데리고 다니느라 미루었던 참깨를 털기로 했습니다. 사위와 손자 두 명이 따라나섰습니다. 참깨 터는 일을 처음 해 보아서인지 너무 신기 해 하였습니다. 사위 둘은 깻단을 들고 손자들이 나무막대로 두드렸습니다. 마치 비가 오듯이 깨가 쏟아지는 소리에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깨가 쏟아진다.'는 말이 농사일에서 유래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터는 날은 노모께서 오셔서 마무리를 해 주셨습니다. 시골로 이동하여 깨에 섞인 부스러기와 먼지를 선풍기로 날리고 노모께서 키질을 하며 깨 한 톨이라도 버리지 않으려 하시는 모습에서 평생 농사일을 해 오신 알뜰한 손길이 엿보였습니다. 내년에 구순이신 노모께서 아들 농사일을 도와주시니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팔이 아프다며 키질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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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