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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한 스님이 탁발하러 길을 가다 산세가 험한 가파른 절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절벽 아래에서 "사람 살려" 하고 절박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가 들리는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실족했는지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오?"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옵니다. 산 너머 마을로 양식을 얻으러 가던 중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는데, 다행히 이렇게 나뭇가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아있으니 뉘신 줄 모르오나 어서 속히 좀 구해주시오. 이제 팔에 힘이 빠져 곧 죽을 지경이오."

스님이 아래의 지형을 자세히 살피니 장님이 붙잡고 매달려 있는 나무는 땅에서 겨우 사람 키 하나 정도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지요. 스님이 장님에게 외쳤습니다.

"지금 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 이상 힘을 안 들이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자 장님은 애원했습니다.

"이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면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즉사하고 말 것인데, 앞 못 보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겨 제발 좀 살려주시오."

그러나 스님은 장님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습니다. 그런 와중에 힘이 빠진 장님은 손을 놓쳤고 땅 밑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은 장님은 이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멋쩍어하며 인사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우리의 삶도 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싶습니다. 끝없이 헛된 욕망에 집착하며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 버리면 곧 죽을 것처럼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것이 그대로 청맹과니입니다. 썩은 동아줄과 같은 물질을 영원한 생명줄로 착각하고는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며 허둥대는 불쌍한 우리네 삶. 위의 이야기는 스님들이 즐겨 삶의 지표로 삼는 '방하착(放下着)'이라는 예화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온갖 우월감이나 자책감,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을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 버리라는 말이겠지요.

오뚝이는 속이 적당히 비어 있으므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텅텅 비어 있거나 빈틈없이 꽉 차 있다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질 못합니다. 마음도 3분의 1은 적절하게 비워 놓아야 새것과 남의 것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속이 꽉 찬 사람이 마음을 적당히 비운 것이 내공(內空)이요, 스스로 내 것으로 가득 채운 것이 자만(自滿)입니다. 자만으로 가득 찬 사람은 새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음의 본성(本性)은 본래 빈 그릇과 같이 텅 빈 것이다. 한곳에 집착하지 않고 그물을 통과하는 바람처럼 걸림이나 머무름이 없이 텅 빈 마음이라야 인생의 번거로운 짐을 자유롭게 벗는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고달픈 것이다. 텅 빈 마음이라야만 당신과 나의 이해와 갈등에서 벗어나 우리가 되는 것이다. 빈 마음이 바로 삶의 완성이다.'

새해 벽두, 가슴에 새길 만한 묵연 스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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