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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석 달 전쯤, 최양업 신부의 첫 사목지인 중국의 '차쿠 사적지'를 지키는 이태종 요한 신부가 천주교청주교구에서 매주 발행하는 청주주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더군요.

<시(詩)의 창작 에너지가 '영감'이라면 소설의 창작 에너지는 '광기'라고 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몇 년을 태워도 타지 않을 연료가 필요한데, 그것은 작가가 죽을 때 죽더라도 이것만은 세상에 꼭 외쳐야겠다는 광기, 그 응축 덩어리를 장기간 거미줄처럼 뽑아 쓰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최장편소설은 '토지'이다. 박경리 작가는, 출판사별로 권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총 20권 가량을 26년간 고질과 투병하며 완필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고 하동에 내려가 '토지 문학관'을 개막할 때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링거를 몇 개나 꼽고 숱한 밤을 새우면서도 버텼는데 '어, 내가 왜 이러지· 나의 어느 구석에 고였던 눈물일꼬?'하며 자신을 돌아보니, 그게 바로 장편을 써내게 한 힘이요 창작 동기였다.>

외국의 사적지에 근무하는 신부가 느닷없이 '소설가의 광기'를 들고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싶어 이어지는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야기는 '서러움'이라는 '인간의 멍에'로 이어지더군요.

<박경리 작가가 일을 마치고 나서야 안 동력(광기)의 정체는 바로 '서러움, 인간으로 빚어져 인간으로서의 숨을 이어가는 서러움' 덩어리였다고 한다. 그 '서러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혹,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성, 이마저도 생로병사라는 굴레에 매인 인생의 '멍에'를 뜻하는 게 아닐까, 나름 짐작했다. 왜 갑자기 특정 작가가 풀어낸 '인간 생명의 굴레, 멍에' 타령이냐면, 지난봄에 코로나 탓에 차쿠로 가지 못하고 보은의 멍에목 성지로 왔었는데, 이 가을에 또 오게 되어서다. 지명이 꼭 '멍에목'이라서가 아니라, 개선되지 않는 이 코로나야말로 작금, 인류가 짊어지고 있는 멍에가 아닐까 싶다. 정말, 가까이서 멀리서 악전고투하시는 업계를 보면 서럽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문학작품에 이 '인간의 조건'이 '멍에'로만 표현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신들과 경합하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유한한 생명마저 당당하다. 오히려 신들이 인간을 질투한다는 영화 '트로이'의 대사가 그것을 잘 말해 준다. 또한 그리스 대문호 중에 '인간의 숨'을 서럽지 않게 묘사한 이도 있다. 도리어 "신들이여, 당신은 아파보았소? 늙어보았소? 마지막 애타는 이 사랑을 아시는가?"라고 주장한다.

암만 그래도 인간 생명 안에 깃든 '서러움'은 깊게 실재하는 법이다. 어떤 때는 남들 때문에, 어떤 때는 자신 때문에, 한숨이 나오고 눈물도 나온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는 성경 구절처럼 이웃을 대하고 싶지만, 사흘이 못가서 '불완전성'을 실토하게 된다. 그렇게 자기 마음마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는 타고난 나약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래저래 인생은 '멍에'이다.>

글 속의 '인간의 멍에'는 질기게도 우리에게 달라붙고 있는 코로나를 짊어진 채 끝을 맺더군요.

<오늘같이 소설 '토지'를 운운한 날은 타계한 여류작가의 음성도 들리는 듯하다. "저 역시 당황했던 내 눈물을 들여다보니, 그건 인간 생명으로서의 서러움이었습니다. 난 그 서러움을 태웠습니다. 서러움을 팔았고요. 그리하여 일을 완수했습니다." 나도 코로나가 다 지나갔을 때 '코로나 멍에'를 잘 졌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코로나 서러움'으로 잘 씻겨 오히려 정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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