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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젊은 날엔 무익한 일에 열정을 쏟곤 했다. 수년 동안 찻잔만 대하면 그것을 구입, 모으는 일에 몰입했다. 돌이켜보니 '취미를 넘어 탐욕의 일부가 아니었나' 뉘우쳐진다. 수입 산이든 국내산이든 가리지 않았다. 특이한 디자인을 지닌 찻잔 만 보면 망설임 없이 구입하였다.

이렇게 사 모은 게 몇 년 지나자 당시 집안 수납장 전부를 꽉 채울 량이었다. 이것들이 나중엔 온 집안을 잠식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별난 취미도 한 순간 마음자락에서 떨치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 여름날 일이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수납장 문이 갑자기 열리며 수많은 사기 조각들이 '우르르' 밖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가구 장식장 선반이 많은 찻잔 량 무게를 견디다 못하여 일제히 주저앉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고는 순전히 욕심을 절제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동안 사 모으기 시작한 찻잔들이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엄청난 개수로 불어났다. 진열할 곳이 마땅찮아 컵 위에 포개어 잔뜩 쌓아둔 게 화근이었다. 그 많던 잔이 모조리 깨트려지자 이후론 더는 찻잔 사 모으는 집착에선 마음이 멀어졌다.

지난날 매사에 절제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하다. 절제는 다 아다 시피 지나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특질로서 극단적인 독단에 빠지지 않는 중용을 갖추는 일이 아니던가. 절제로선 '용서·겸손·신중성·자기 조절'이란 강점을 지니는 일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삶 속에서 중용에 의한 덕목을 지키지 못한 듯하다. 심리적 규각圭角도 남달랐다. 무슨 일이든 흑백논리가 극명했잖은가.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떤 경우라도 그 상황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리 큰 이익이 눈앞에 있어도 결코 불의 앞에 비굴하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만 해도 그렇다. 상대방이 신의를 저버리거나 자존심을 크게 다치게 하면 그 앞에서 가면을 쓰고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이로보아 '소인배가 아니었나' 하는 성찰도 해본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아집으로 가득 찼던 마음마저 그 강도를 뭉긋하게 누그러뜨리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매사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고속 전철 안에서 승객이 안고 온 애완견이 열차 통로에 소변을 흥건히 싸도록 방치해도, " 강아지가 어지간히 급했나봅니다." 라며 전과 달리 눈빛을 달리했다. 노인 앞에서 이마에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 담배를 피워대도 절대 버릇없다고 탓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교묘한 술책을 부려도 숙맥인양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한다.

괜스레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아님 바른 말, 혹은 지혜로운 척을 하면 그 대가는 불보듯 뻔해서다. 이는 사회적 규율이나 윤리 및 도덕성을 강조하면 별종 취급 받기 일쑤인 세상이어서라면 지나칠까. 어찌 보면 사람답게 사는 미덕이 점차 희석되는 세태 탓인지도 모르겠다. 정의보다 달콤한 불의가 득세하는 세상은 혼탁하다. 그러나 좀체 이런 일들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삶의 모순 및 오류 등이 안겨주는 사회적 이중률은 인간 세상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어느 사회이든 어둠과 그늘은 공존하기 마련이어 서다. 그럼에도 늘 드리워지는 어둠과 음습한 그늘 속엔 사회적 약자만이 불이익을 당하는 게 현실이다. 어둠이나 그늘은 색깔로 치자면 검정색이다. 어둠은 추醜와 악惡을 덮어주는 기능도 있으나, 부정과 부패는 어둠 속에서 슬그머니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어둠이 지닌 색은 검정색이 아니던가. 이 색은 왠지 절망과 공포를 의미하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그 검은 그림자의 실루엣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밝은 사회 구현은 좀 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삶속에 깊이 침투한 이 검정색 실루엣들이 하루빨리 말끔히 거두어지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람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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