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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송나라의 명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다. 그는 평생 창작한 자신의 글들이 거의가 삼상(三上)에서 발상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삼상이란 마상(馬上), 침상(枕上), 측상(厠上)으로 기억한다. 이중 측상(厠上)은 즉 측간(厠間)에서 구양수의 작품 구상 및 창작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필자의 어린 시절 측간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대문 옆, 혹은 마당가 한구석 후미진 곳에 자리했다. 캄캄한 밤엔 이곳 출입하기가 왠지 겁이 났다. 농촌에선 둥근 시멘트 통을 땅 속에 깊이 묻은 후, 나무로 만든 발판을 그 위에 얹어 사용 했다. 이 때 용변을 볼 시엔 인분이 얼굴에 튀기도 하여 매우 불쾌하고 한편 난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뿐만 아니라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는 절로 코를 막게 했다. 그 당시엔 화장지가 귀했다. 휴지 대용으로 주로 신문지를 오려 철사 줄에 꿰어놓고 사용하기도 했다.

어린 날 뒷간에서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 동안 일이다. 지독한 냄새에 코를 막으며 용변을 보는 짧은 시간에 조각 난 신문을 읽곤 했다. 이 일은 측간의 불편한 상황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책이 귀했던 그 시절이었다. 독서에 대한 갈증을 잠시나마 그곳 철사 줄에 꿰인 신문지를 통하여 충족시키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곳에서 신문 읽기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졸라 신문 구독을 하였다. 오늘날 필자가 글쟁이가 된 것도 아마 어린 날 뒷간에서 즐겨 읽은 신문지 쪼가리가 일조 했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화장실은 사고(思考)의 산실(産室)이기도 하다. 우리 땅에 화장실이란 말이 생긴 것은 1940년대이다. 1950년대부터 세면기와 변기, 욕조로 이루어진 화장실이 설치됐다. 이때는 몸을 닦는 곳과 배설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변소(便所)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오기 전까지 쓰인 일본 식 표현이다. 그 이전에는 측간(厠間) 혹은 뒷간이라고 흔히 불렀잖은가.

"예술인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수리공"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예술작품을 측간에서 구상하고 꾸린 것은 구양수만이 아니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측상(厠上) 사고의 자세란 설도 있다. 루소 작 '고백'을 읽어보면 그는 젊은 시절 책방에서 책을 빌려오면 주로 화장실에서 읽었다고 한다.

프랑스 가정집처럼 필자 역시 화장실에 작은 책꽂이를 마련, 몇 권의 책을 비치했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는 동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책장을 펼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지루한 내용의 책도 마지막 장까지 읽을 수 있어서다.

20여 년 전, 중국 여행 때 일이다. 그곳 관광지 화장실은 차마 출입이 망설여질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다. 아무리 중국 땅 풍광(風光)이 산자수명(山紫水明) 한들, 생리 해결 장소가 지저분하고 불결하면 관광 효과는 반감半減되기 마련이다. 로마 시대 때는 화장실 칸막이에 구멍을 뚫어 서로 모습을 보이게 함으로써 공중도덕을 지키게 하였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화장실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러나 현대는 어떤가. 우리나라 화장실 청결 지수가 매우 높다. 지난날 불결한 이미지를 지녔던 우리네 화장실이 이젠 아니다. 산뜻한 인테리어는 물론이려니와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도 흘러나온다. 내부 곳곳엔 꽃병도 놓였다. 또한 여성들의 화장을 고치는 공간도 있다. 아름다운 그림도 걸렸다. 외진 곳엔 보안 시스템도 갖췄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상벨을 누르는 장치가 마련 된 '안심 화장실'이 그것이다. 이런 화장실 환경 개선이 우리나라 국민 의식 수준 및 가치관을 가늠할 수 있는 초석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국격(國格)이 가일층 높아져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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