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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눈 멀미가 날 정도였다. 지천으로 피어난 봄꽃들 때문이다. 흰색, 붉은색, 연분홍, 형형색색으로 어우러진 영산홍 꽃밭을 거니노라면 순간적으로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이제 영산홍꽃잎이 한 잎 두 잎 시들자 온 산하를 연초록 융단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연은 나무나 꽃들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빛깔들을 선사할 수 있을까?

봄이 오면 어김없이 현란한 빛깔로 꽃잎을 물들이고 있잖은가. 붉디붉은 영산홍 꽃 앞에 서있노라면 그동안 회색빛이 전부였던 메마르고 옹색했던 가슴마저 화안해진다. 이 때 마음 그릇 역시 한껏 넓어지는 느낌이다. 한편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이 완연해지는 나뭇잎들을 대할 때마다 권태로운 일상을 위안 받는 기분마저 든다. 이런 나무, 꽃들은 참으로 의연하다는 생각이다.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나 쏟아지는 봄비에 나뭇잎, 꽃잎을 전부 떨구어도 결코 자연을 탓하지 않아서다.

우리는 어떤가. 젊은 날 지녔던 아름다움을 상실하거나 나잇살로 몸에 군살이 붙으면 왠지 초조해 하고 불안해하기 일쑤다. 애꿎은 세월을 탓하기도 한다. 그래 여성들은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피부과를 찾아 온갖 시술로 젊음을 되찾으려고 안간힘 쓴다. 성형도 감행 한다.

하지만 살 거죽에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시술을 한들, 잠시나마 잃어진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면의 주름살은 쉽사리 펼 수 없을듯하다. 이 때 노화된 외모보다 더 초라한 모습은 마음 속 고이 가꿨던 꽃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일일 것이다. 교양 및 지성, 겸양을 저버리는 언행으로써 인간의 품격을 잃을 때 그렇다. 그래 은은한 인향(人香)이 풍겨 나오는 노년의 모습은 기품 있어 보여 아름답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학창시절 친구 모임 나가기를 꺼린단다. 어쩌다가 오랜 만에 만나면 남편 자랑, 돈 자랑, 자식 자랑, 나아가서는 소유하고 있는 명품 자랑 하기 일쑤여서란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못 갖춘, 젊은이들은 더욱 이들로부터 유리(遊離)되는 기분이란다. 이 때문에 아예 학교 친구들과는 단절하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닌 것을 미처 못 갖춘 여성들은 심한 박탈감내지 열등감마저 느끼기도 한다니…. 우정과 친목이 목적인 모임이 이런 감정을 한껏 자극케 한다면 어느 누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랴.

이런 일은 유독 젊은이들에게만 국한 된 게 아닌가 보다. 나이들 수록 본향을 되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입맛이 씁쓸하다. 자신보다 무엇으로든 월등한 친구나 지인을 보면 독 가시 같은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곤 한단다. 그도 모자라면 상대방 허물을 들춰 뒷담화하기 예사란다.

젊은 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바라봐도 까르르 웃고, 불어오는 훈풍에도 가슴 설레던 그 밝고 생기발랄했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 시절 자신만큼은 모진 풍파에 시달려도 가슴은 언제나 푸르고 순연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현대 의학 발달로 백세 시대라고 일컫지만 가슴에서 가꾼 꽃을 스스로 상실한다면 노화도 앞당겨 질 듯 하다. 뇌가 젊은 사람은 육체도 노쇠하지 않는다는 학계의 연구발표도 있잖은가. 오죽하면 평소 매사 긍정적이며 호기심을 지녀 글을 쓰고 독서를 하는 노년의 삶엔 치매도 얼씬 거리지 못한다고 하였을까. 삶에 쫓겨 매사 감동에서 멀어지고 마음의 속진(俗塵)이 켜켜이 쌓일수록 꽃 가꾸듯 마음도 늘 화사하게 가꾸는 일이야말로 내면이 성숙해지는 지름길이 아닌가. 필자의 경우다. 심신의 주름살을 활짝 펴기 위하여 향기 짙은 꽃을 늘 가슴에서 잃지 않도록 노력한다. 매일이다시피 정성껏 그 꽃을 가꾸곤 한다. 삶에 찌든 윤기 잃은 마음 자락에 습윤(濕潤)이 한껏 깃들게 하는 방편으로써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는 게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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