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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9.16 16:50:18
  • 최종수정2020.09.16 16:50:18

김혜식

수필가

가운데 손가락 정맥이 심장으로 통한다는 낭설이 있었다. 15세기 무렵 외국에서 일이다. 이 탓에 결혼식 날 두 사람의 변함없는 사랑 증표인 예물반지를 이 손가락에 끼는 게 유행이었다. 지난날 우연인지 모르나 나도 결혼반지를 이 손가락에 꼈다.

그동안 삶을 살며 이 반지가 나의 마음을 이끌어서 심장을 뜨겁게 사랑으로 달구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지도 모를 일이다. 평생을 살며 불변의 마음을 지니기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음의 변화를 겪는 게 인간이다. 이 때문인지 철석같은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곤 한다. 뿐만 아니라 매사를 이해타산에 얽혀 사노라면 조금치라도 자신에게 불이익이 주어져도 등을 돌린다. 요즘처럼 이기심이 팽배하고 개인주의 중심인 세태엔 이런 사회적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날 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오늘의 적이 내일은 동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예로 영국 비밀 정보국의 주요 간부였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창설에도 적극 관여했던 일명 킴 필비 이중간첩 사건만 하여도 그렇다. 킴 필비는 학창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반공주의로 전향,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승진을 거듭해 왔다. 실은 이 모든 게 위장술인 것을 주위에선 까맣게 몰랐다. 사실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온 엘리트 다섯 명과 모의, 국가 정보를 빼돌리기 위하여 외교와 안보 분야에 침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귀를 원해서도 아니었다. 이념에 투철한 나머지 스스로 이중간첩이 된 것이다.

킴 필비 경우만 보더라도 영원한 숙적宿敵도 없고 불변의 내 동지도 없지 않을까 하는 회의적 생각이다. 그만큼 인간은 자신의 이익 앞엔 의도 정도 돌아보지 않는 얍삽한 면을 지녔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나마 세상엔 윤리와 도의라는 게 존재하고 있어 다행이다.

그럼에도 종종 정의 및 신의를 저버리는 일들이 다반사다. 언젠가 지인이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토로한 적 있다. 인간관계가 마치 잘 깨지는 질그릇과도 같단다. 어쩌면 이런 인간관계 와해는 서로 지켜야할 금도禁道를 벗어난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지인의 하소연을 들어본즉 그녀의 친구는 자신 앞에선 친한 척 하다가 돌아서서는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이간離間을 시킨다고 했다. 평소 지인을 시기, 질투 하여 음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위 사람들한테 온갖 간계奸計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듣자 삶을 살면서 가장 경계할 사람은 어찌 보면 간사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도 때론 자신도 모르게 탁류에 휩쓸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의로 타인을, 그것도 친구를 곤경에 빠트리려는 심보는 지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지인의 친구 이야기를 꺼내노라니 이중간첩 킴 필비의 행보가 다시금 떠오른다. 킴 필비 만 하여도 어찌 보면 간신이나 다름없잖은가. 그야말로 간에 붙고 쓸개에 붙는 게 이중간첩 아니던가. 킴 필비가 항심恒心을 가진 자였다면 한낱 자신의 이념을 위하여 영국을 배반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게 아니어도 때론 사람의 마음은 조석朝夕으로 변하곤 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두, 세 번 맛보면 이내 미각이 둔감해진다. 예쁜 꽃도 자주 들여다보면 또 다른 꽃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듣기 좋은 소리도 계속 들으면 청각이 무뎌진다. 평소 절실하게 원했던 것을 손아귀에 넣으면 더 귀한 것을 원한다.

이러한 심리 현상 저변엔 만족을 모르는 바다와 같은 욕심이 짙게 깔려 있어서 일게다. 항심恒心은 곧 천심天心이다. 하늘의 마음은 양심이기도 하다. 양심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선명하게 비추어주는 마음의 거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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