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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커피 향에 반해 커피숍을 자주 찾는다. 하늘이 온통 회색빛으로 낮아질 때면 어김없이 혼자 커피숍을 찾곤 한다. 오늘도 단골 찻집을 찾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그 향과 맛을 음미하고 있을 즈음, 어느 초로의 남성이 허락도 없이 맞은편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리곤 말을 걸어온다. 갑작스러운 그 남자의 수작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다소 냉랭한 태도에 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아주머니! 저는 이곳 커피숍을 업무 차 자주 옵니다. 혼자 이곳을 찾는 아주머니를 목격하고 '무슨 사연이 있구나' 했어요. 왜냐면 이곳에 들리실 때마다 이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호숫가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우수를 느꼈거든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커피 향에 매료돼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내 말에 그는 실례했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몇 분 후 그가 자리를 뜨자 커피숍 주인이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건넨다. 종전 그 남자가 며칠 전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더란다. 나를 이 곳에서 마주칠 때마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단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는 마시지 않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단다. 그런 모습이 필경 실연을 했거나 아님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 같단다.

찻집 주인 말을 듣고 그 남자의 임의적 판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릴없이 남의 여자 동태를 살피는 것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음악 감상과 커피 향에 빠진 나를 보고 실연당한 여인으로 판단했다니 우스울 수밖에…. 무엇보다 실연을 당할 나이로 젊게 바라봤다니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음악과 그곳에서 풍기는 구수한 커피 향에 반한 게 전부다. 그런 나를 마치 크나큰 슬픔에 젖은 여인으로 바라본 그 남성을 떠올리자 유행가 '그 겨울의 찻집'이 절로 입속에서 흥얼거려진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이른 아침에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않아/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홀로 지샌 긴 밤이여… (하략)'

이 노랠 입 속으로 가만히 부르노라니 애조 띤 음색과 시적인 가사에 갑자기 마음이 침잠되는 기분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희열과 기쁨만 안겨주는 게 아닌가 보다. 이 노래 가사 대로라면 누군가를 가슴 절절히 사랑하기에 더욱 외롭고 고독한 게 아닌가. 흔히 사랑을 '돌봄의 마술사'라고 일컬으련만 혼자만의 짝사랑은 재도 없이 타들어가는 초 토막처럼 애가 탄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사랑 할 때도 외롭고 또한 슬프다. 상대방이 자신의 진심을 헤아려 주지 않아 마음 아프고 그리울 때 맘껏 볼 수 없어 괴롭다. 오죽하면 불교의 법구경에서조차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이를까. 이게 아니어도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다. 태어날 때는 물론,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혼자다. 천하를 얻은 영웅도 금 이불을 덮고 자는 부자도 매한가지다. 인간은 고독과 외로움을 숙명적으로 타고나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독이 밀려올 때마다 마른 꽃 걸린 커피숍 창가에 홀로 앉아 외로움을 마시는 마음의 사치는 누려본 사람만이 그 진가를 안다.

술, 담배, 명품 구입 등으로 허허로움을 달래는 일엔 서투르다. 가끔 커피숍에 들러 구수한 커피 향, 추억을 불러오는 한편의 음악, 깊은 명상을 한다. 또한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 및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도 얻는다. 비록 커피숍일망정 이곳에서 여백(餘白)의 미(美)를 찾을 수 있는 삶의 일탈이 아니던가. 무심코 창밖을 보니 잿빛 하늘이 기어코 흰 눈을 내려주고 있다. 따끈한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마치 흰 나비 떼처럼 허공에서 내려오는 함박눈을 바라보는 이 여유로움이 오늘따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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