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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

인간관계만큼 어려운 게 없다. 가면을 벗고 민낯을 상대에게 보이면 적나라한 실체에 무시와 질시를 당하기도 한다. 반면 몇 겹의 허울을 뒤집어쓰면 표리부동하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자신의 진심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할 때다. 이는 진실이 상대방 마음의 가늠자에 미처 비치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이로보아 타인의 진심을 제대로 헤아리는 혜안을 갖추기란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가보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남의 일에 팔을 걷어붙이기도 주저된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태에 나 살기도 바쁜데 남의 일에 마음을 쓴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타심 및 진실한 마음이 결여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당면한 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면서 걸핏하면 남의 일에 앞장서곤 하였다. 그러나 다정도 병인 양 남의 일에 끼면 한국 사회에선 곤욕 치르기 예사다.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청소년들 훈육했다가는 몰매 맞는 세상 아니던가. 어디 이뿐인가. 자신에게 베푼 배려 및 친절에 고마운 마음을 지니기는커녕 토사구팽으로 은혜를 갚기도 한다.

하지만 어둠이 있음 밝음도 있듯이, 또한 악惡의 이면엔 선善도 존재하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섭리는 오묘한 균형을 이룬다. 지난 2011년 여름, 영국 전역이 폭력 시위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다. 시위대는 흑인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것에 대해 항의 했다. 그러나 이 시위대들은 약탈, 방화꾼들로 돌연 돌변, 닥치는 대로 주변 상점을 털고 차량 및 건물 등에 불까지 질렀다. 이 때 마흔 다섯 살 폴린 피어스라는 흑인 여성이 이 약탈꾼들을 온몸으로 막고 나섰다. 그녀는 그들 앞에 서서, "사망한 흑인의 억울한 죽음에만 항의해라, 아무런 죄 없는 가게는 가만둬라."라고 호소했다. 이 장면은 트위터를 통하여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행동을 볼 수 있었다. 또 있다. 수년 전 역시 영국에서 마흔 여덟 살 영국 여성이 피 묻은 칼을 든 테러범 앞에 정면으로 나서서, "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을 내게 넘겨 달라.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 여성이 테러범과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였고 그동안 테러범들은 더 이상 다른 행동을 저지를 수 없었다.

언젠가 내가 속한 모임에서 여행을 떠날 때 일이다. 버스에서 한창 차창밖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 심취할 즈음이었다. 불콰하게 술에 취한 남자 회원이 버스 앞자리로 비척이며 나가더니, 느닷없이 모임 회장의 멱살을 꼬나 잡고 양쪽 뺨을 보기 좋게 후려갈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잡은 멱살을 힘껏 흔들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하나 나서서 그의 행패를 만류할 엄두를 못 내었다. 보다 못한 난, " 모처럼 회원들이 여행을 떠나는 자리이므로 화가 나도 자제해 주세요." 라고 말했다. 이에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멱살을 잡았던 손을 슬그머니 풀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테러범이나 약탈자들의 포악한 행동과 맞선 외국 여성들에 비하면 그 날 내가 행한 일은 견줄 일은 못된다. 영국의 두 여성은 자칫 자신의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여성들은 이타심을 발휘, 대의大義를 위하여 위험한 일 앞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았다. 이 두 여성이야 말로 작은 영웅이란 생각이다. 일본 고미카와 준페이 소설, 『인간의 조건』의 내용만 해도 그렇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전투에 나가기 전날 보급품을 졸병들에게 나눠주라며 총을 들고 자신의 상사에게 과감히 덤볐다. 이는 오롯이 주인공의 타인에 대한 이타심에 의해서다. 요즘 내 밥그릇만 챙기기 급급해하고 남의 일은 강 건너 불 보듯 무관심한 세태 아닌가. 문득 영국의 두 여성,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행동을 돌이켜보노라니 때론 달걀을 바위를 향해 던지는 무모함도 필요한 세상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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