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26.2℃
  • 맑음강릉 26.3℃
  • 맑음서울 27.2℃
  • 구름많음충주 25.0℃
  • 구름많음서산 24.8℃
  • 흐림청주 25.3℃
  • 박무대전 23.9℃
  • 구름많음추풍령 23.1℃
  • 구름많음대구 25.8℃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많음광주 25.7℃
  • 흐림부산 24.7℃
  • 구름많음고창 25.0℃
  • 구름많음홍성(예) 24.2℃
  • 구름많음제주 23.4℃
  • 구름많음고산 23.1℃
  • 맑음강화 25.3℃
  • 맑음제천 23.5℃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천안 23.8℃
  • 구름많음보령 23.8℃
  • 흐림부여 23.2℃
  • 흐림금산 22.6℃
  • 맑음강진군 26.3℃
  • 맑음경주시 27.1℃
  • 구름많음거제 24.0℃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2창수

아티스트

위대한 승츠비로 불리던 돈 잘 벌고 잘생긴 빅뱅의 승리가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남클럽 손님과 종업원의 싸움이 발단되어 경찰과 클럽의 유착, 여성을 성상품으로 사용해가며 돈을 벌었다는 내용, 물뽕과 같은 마약류 유통 의혹이 제기되며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미모의 여성이 방송에 나올 때 여신의 강림이니 뭐니 하는 자막을 보는 것이 익숙한 요즘 방송에서 여성은 이미 상품으로 등장된 것이었다. 남자 게스트들은 과도한 몸짓으로 여성 출연자의 외모를 칭찬하기 바빴고 시청자들은 미모의 여성에게는 당연히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과거 85년전에도 여성에게 가해지던 상품적 대우는 있었고 그러한 대우를 몸소 저항하던 여성이 있었다.

"나는 그대들(남성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 1934년 '삼천리'지에 기고한 '이혼 고백서' 중에서

수원에 가면 시청 근처에 나혜석 이름의 거리가 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거리 이름으로 나혜석이라 붙어있지만 1970년대 이전에는 바람피우다 이혼당한 여인정도로 인식되어 이름 자체가 거부감이 있었던 이름이었다. 시대와 맞지 않는 당당한 여성으로 살다 쓸쓸히 죽어간 나혜석은, 당시 파격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신여성이다.

나혜석은 호조참판을 지낸 증조부와 조부가 있었고, 아버지도 시흥군수를 지냈을 만큼 유복한 가정의 집안이었다. 당시사회는 남성과 여성 차이를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인정 할 때라서 집안 사정에 따라 여러 첩들과 함께한 생활하기도 하였다. 나혜석은 다른 첩들이 낳은 자녀들과 함께 살면서 왜 남자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이 당연한데, 여자는 한남자만을 위해 정조를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일까·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 펼쳤던 여성 운동의 철학적 근간이 되었다.

나혜석은 1913년 일본으로 미술공부를 위해 유학을 가게 된다. 「세이토」라는 일본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를 알게 되고, 여성해방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남여 평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나혜석은 우월한 미모와 지적인 행동으로 많은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으니 나혜석의 남여평등 주장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당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수용될만한 이야기였다. 1914년 일본은 근대여성주의와 민주주의개념이 전파되었는데 자연히 유학시절 이러한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고 유학생 잡지 등에 기고로 신여성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나혜석은 분명 유명한 한국 여류 미술작가이다. 그녀는 한국최초의 여성서양화가이며, 유복한 집안과 능력 좋은 남편의 역할로 미술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게 된 것이 그녀를 유명하게 했을까· 그녀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선진 미술수업이나 유럽 여행을 통해 이국적 모습을 보여 준 것만으로 유명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녀가 유명한 한국의 여류작가인 것은 당시 시대와 맞지 않는 남여 평등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작품을 한 것이 그녀를 한국 대표 여류작가로 만든 것이다.

사회적으로 남여의 동등함을 외치던 나혜석은 이혼과 사회 멸시로 인해 정신쇠약, 치매로 1948년 무연고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녀는 53살임에도 검시관들의 눈에는 60대 중반으로 기록되었다. 이렇듯 초라한 행세로 세상과 등졌지만, 역사는 그녀의 당당했던 2~40대를 기억한다. "내 갈 길은 내가 찾아 얻어야 한다."는 여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었던 선각자였다. 여성을 상품으로 이용했다고 사회나 특정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성의 권리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겨야 권리가 생겨난다.

※ 2016년 시방아트 기고문을 참조함.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이연희, "100만 청주, 몇 사람이 아닌 청주시민이 함께 그려야"

[충북일보] 더불어민주당 이연희(청주 흥덕) 의원은 지난 1월 SK하이닉스가 CES 2026에서 HBM4 16단을 공개하면서 차세대 AI 메모리 경쟁력도 분명히 보여줬다고 판단했다. 이런 흐름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전망을 종합할 때 청주시가 앞으로 4년 동안 최소 1조원 수준의 법인지방소득세를 확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이 막대한 재원이 일시적으로 들어왔다가 일회성 사업이나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흩어지면 청주의 미래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이 의원은 행정 몇 사람이 아니라 청주시민이 함께 그리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활용방안을 찾자고 가장 먼저 제안했다. 1조원 세수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청주의 미래를 누가 어떤 원칙으로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공론화위원회'가 6·3지방선거 민주당 주요공약으로 다뤄지는 것인가. "이번 공론화 제안은 청주에 들어올 수 있는 큰 재정을 미래의 청주를 위해, 청주답게, 또 시민답게 쓰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공약화 여부는 결국 청주시장 후보자의 의지와 판단이 중요하다. 지방선거 공약은 지역의 미래 비전과 행정 철학이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토론회에 시장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