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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9.09 16:10:52
  • 최종수정2018.09.09 16:31:55

김병규

교육학 박사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니 좋은 계절은 사탕수수와 같아서 오랜 뒤에야 멋진 경지를 알게 된다는 선생의 말씀을 뇌이며 해질녘 소슬해진 도산서당의 암서헌 마루에 앉았다. 산속에 거하여 은미한 효험을 바라시던 선생의 향기가 그윽한 곳이라 상기도 완락재에 거하시는 듯 여겨져 공근한 자세로 다만 귀를 열었다. 사위 적막해 풀벌레 소리만 낭자한 지금인데 마루에는 제자들이 단정히 꿇어앉아 낭랑히 책을 읽고, 선생은 방에서 성독 소리를 흐뭇한 마음으로 듣고 계시는 듯하다.

 서당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며 유생들의 공부 장소인 마루는 원목의 수축과 변형에 견딜 수 있도록 격자문의 우물마루로 구성됐다. 그런데 나의 눈은 본 마루 옆에 덧붙여 지은 1칸 크기의 살평상에 쏠린다. 이 평상은 선생의 제자 한강 정구(1543~1620)가 지은 것이라 전해진다. 선생 소천 후 37년경에 안동부사로 부임한 한강은 도산서당에서 공부한 인연에 감사하고자 서당을 증축하려 했다. 3품의 고관이라 마음만 먹으면 완전 개축도 가능했겠으나 살평상과 눈썹처마로 실제 4칸이나 3칸의 원래 구조를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선생이 지인 이문량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당의 작은 부분 하나 하나 모두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창호지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도록 당부하셨던 말씀에서였다.

 살평상은 줄마루의 형태이다. 마루 사이가 숭숭 뚫려 밑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얼기설기 짜여 있으므로 얼핏 조악해 보인다. 나무도 그리 좋은 재질로 보이지 않고 특별히 마루에 공들인 흔적도 없다. 이유가 무언가. 하나는 평소 청빈을 강조하신 선생의 의향을 살핌이요, 또 하나는 공부해 본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아무리 여름이라 할지라도 오랜 동안 마루에 앉아 공부하다 보면 땀띠도 나고 심한 경우 엉덩이가 터지고 짓물러 피까지 날 지경이 된다. 궁여지책으로 엉덩이를 살짝 들어 통풍을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그예 터진 피가 바지 옷자락에 배어나오게 마련이다. 중종 때 설옹 양연의 조갑천장(爪甲穿掌)이나 다산 정약용의 과골삼천이 이 같은 공부모습의 실례인데 '다른 사람이 열을 하면 나는 천을 하리라(人十己千)'는 가르침을 따르다 보면 제자들의 엉덩이에 바람들 날은 거의 없었으리라. 생전 손에서 심경(心經)을 떼지 않을 정도로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한강도 서당 마루에서 피 터지게 공부한 경험이 있기에 평상을 덧대어 만들 때 특별히 통풍에 주안을 두었던 게다. 그러므로 살평상은 선비들의 치열한 공부모습의 증빙이요, 공부는 엉덩이와 무릎으로 하는 것이며, 아이디어와 창의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 싸움이라는 요즘 교육 이론의 방증이겠다. 도산서당 살평상을 보면 숙흥야매로 발분망식하는 선비들의 공부 정경이 확연히 다가온다. 대금정악 무형문화재이셨던 김응서 선생에게 대금 연습을 줄곧 하다보면 땀띠가 터져 바지 뒷부분에 피가 배어 나온 적도 있었다는 말씀을 들었기에 그런가. 당시까지 도산서당에서도 예와 같이 공부하는 학동들이 넘쳐난 때문에 증축을 했을 테니 선생 사후에도 도산서당의 교육 기능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나 보다.

 문득 요즘 읽는 사문수간(師門手簡)의 내용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제자 월천에게 보낸 편지 모음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선생의 근황과 소소한 일상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책으로 최근 해외여행에도 지니고 다녔다. '고요한 가운데 날마다 노력하여 쉬지 않으니 그 재미가 무궁합니다'는 말씀에서는 도산에 터를 잡고 단표누항의 생활임에도 공부로 맛을 더하고 계신 정경이 생생하다. 또한 '농가에 비가 내리니 기쁨이 들판에 솟구치고, 산을 마주하여 샘물 소리를 들으니 경치와 정취가 부합합니다. 뜰의 풀도 그러하여 만물이 스스로 만족해 하니, 소당(小堂)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즐거움이 또한 끝이 없습니다.'라는 글에서는 그저 감흥만 막막히 솟구친다.

 여름 해가 뉘엿뉘엿 지는 도산서당 마루에서 나는 책 읽는 재미와 겸손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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