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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1.24 15:07:53
  • 최종수정2021.01.24 15:07:53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김수녕 양궁장 주차장에서 낙가산 7부 능선 길로 접어들면 이윽고 보살사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정상 쪽으로 15미터 정도 더 가면 산기슭 위 아래로 돌탑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골짜기마다 이어져 다리로 연결된 골짜기 바로 앞에는 제법 묵직한 돌로 쌓은 것도 있는데 얼추 백여 기가 넘겠다. 45도 내외 비탈 경사를 감안하여 이만한 탑을 쌓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아내는 탑의 모양새가 가족을 연상케 하는데 돌 한 덩어리 한 개를 정성으로 올렸을 마음이 느껴져 그 곳을 지날 때면 숙연해 진다며 연유가 궁금하단다.

35년만의 혹한이라는 날씨에 산을 나섰는데 드디어 돌을 들어 올려 탑을 쌓고 있는 분을 만났다. 수고하신다는 말을 하고 한 시간 가량을 걷다가 되짚어 오는데 아까 그 장소에서 여전히 탑을 쌓고 있다. 옆에 벗어 놓은 초록색 다운 점퍼 위에 장갑을 놓고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맨 손으로 돌덩어리를 올리고 있다. 장갑이라도 끼라 했더니 손이 둔해져 그럴 수가 없다며 지금 돌에 손이 쩍쩍 눌어붙는단다. 언 손 잠시 녹이라며 무슨 사연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묻자 초면인데도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그는 68세로 삼영가스 인근에서 살고 있다. 연금 수급자로 그럭저럭 살만한데 부인이 8년 전 암으로 소천 하였다. 한 해를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진단이었으나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네 차례의 수술을 견디고 4년을 버텼다. 두 아들이 요즘 보기 드문 효자란다. 그동안 자신도 직장에서 성실히 근무하였고 부인에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어도 돌이킬수록 후회만 남는다. 부인 생전 병상에 누워 젊은 시절 찍었던 마이산 돌탑 사진을 보며 다시 여기를 볼 수 있을까 아쉬워하기에 회복되면 다시 가자했는데 슬픔은 시간과 함께 풍화된다지만 추억은 더욱 영롱해진다. 어느 날 낙가산을 혼자 오르는데 산기슭에 어지러이 널려진 돌덩이에 부인의 미련이 떠올랐다. 즉시 보살사 주지 스님을 뵙고 사연과 산기슭에 돌탑 쌓기를 말씀드리자 처사님의 염원을 이루시라며 허락해 주었다. 그런데 돌탑을 쌓은 뒤 다음 날 보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무너트린다. 1기는 영락없고 4기도 몽땅 쓰러지기에 8기를 쌓았더니 반이 남았다. 이렇게 4년 동안 108기를 쌓으려던 것이 어느 덧 250 기를 훌쩍 넘었다. 산 길 걷던 어떤 이는 김밥을 주며 격려도 하는데 젊은 여인이 탑 무너뜨리는 할머니를 목도했다고 지나며 이야기를 해 준다. 하여 겨울 새벽 5시 반부터 잠복한 끝에 이상한 신앙심인지 두건을 쓴 채 돌탑을 밀어 쓰러뜨리는 60대 할머니 두 명을 잡았다. 사연을 듣고는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며 용서를 청한 뒤로 돌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70대의 어느 노인은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고 노기 어린 질책은 했어도 부러 쓰러트릴 힘은 없는 것 같고, 환경 보호를 앞세우며 날을 세우던 50대 남자는 혹시 몰라 조심스럽다. 모쪼록 이 탑을 쌓는 공덕으로 얼마 뒤 저 세상에서 만날 부인이 잘 있으면 하는 바람뿐이란다.

마이산 돌탑은 이갑용 처사가 불심과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쌓았으며, 전국 면면촌촌에 올려진 돌탑이 부지기수이다. 무심코 발에 차이는 돌덩이가 바람으로 포개지면 탑이 되어 간절한 발원을 형상화한다.

시린 가슴에 가슴 또 하나

포개어 안고 산기슭 찾고

크고 작은 돌멩이에

생전에 못다 한 정을 쏟아

조심조심 얹어 놓았다

기억의 편린 쌓이듯

그렇게 쌓았다

산자락에 눈물 한 방울

돌이키면 삶은 숨 가쁜 등행

산 새 한 마리 구슬피 우는데

돌멩이를 포개놓듯

그렇게 포개었다

산기슭에 그리움 한 줌 (망부석탑-望婦石塔)

차 마시며 사연을 들은 아내가 시로 맥을 짚었다. 공감은 상대의 기운을 잘 전달받아 그렇게 느끼는 것.

산기슭의 돌탑은 부인에 대한 그리움 한 덩이 후회 한 덩이로 올린 지아비의 순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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