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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급하게 길을 나섰더니 그날따라 차가 밀려 자칫 약속 시간에 늦지나 않을까 애가 탄다. 우회전으로 나가야 하는 길은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다만 앞차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고 나갈 때만 바라고 있다. 네거리에 다다라 바야흐로 우회전을 받을 순간인데 휑하고 차가 달려들더니 순식간에 끼어든다. 얼마나 급하게 닥쳤는지 백미러에도 잡히지 않았다. 자칫 받힐까 놀라 화들짝 브레이크를 밟게 만드는 짓거리가 참 밉다. 급한 사람이 자기만 있을까만 고맙다는 사인도 없는 것을 보면 평소 새치기를 습관처럼 하나 보다. 이렇게 칼치기 하는 사람은 정작 다른 사람에게는 죽어도 양보를 안 하더라. 참으로 무례하고도 염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손녀를 위하여 아파트 출입문을 열고 기다리는데 아이 뒤에서 치마 바람을 일으키며 쏙 들어오는 여자를 보니 이도 고약하다. 당연한 듯 고개를 빳빳히 쳐들고 들어오는 모양새가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지인의 말을 들으니 이 정도는 오히려 약과다.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바로 옆에 있던 여학생이 청량음료 병을 쏙 꺼내들더란다. 가히 뻔뻔함의 극치요, 참 얌체 같은 사람이다.

그러면 얌체의 뜻은 무얼까. '성냥, 숭늉, 영계'이 '석류황(石硫黃), 숙냉(熟冷), 연계(軟鷄)'라는 한자어에서 변한 것처럼 염치(廉恥)에서 비롯된 국어화한 한자어이다.

'염치'는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가 '얌치'로 어형이 변하고 다시 '얌체'로 변하며 염치가 없는 사람으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체면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추상적 의미가 '그 마음과 관련된 사람'이라는 구상적 의미로 바뀐 것은 그리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나, 원래 긍정적 의미였던 것이 점차 부정적 의미 즉, '염치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얌체 없다'와 같이 '없다'가 지니는 부정적 의미 때문에 '얌체'가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얌체'는 한자어 '염치(廉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얌치'로 변형되었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얌체'가 기실 '염치(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라는 단어에서 출발한 것을 안다면, '얌통머리(야마리)' 없는 '얌체'들도 '염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염치' 없거나 아예 모르는 '얌체'들이 너무 많다. 이런 얌체를 없애기 위하여 선비교육을 하는 당위성이 나타난다. 선비교육은 사람들에게 예의와 염치를 알게 해 주어 면목(面目)을 갖추게 해 준다. 면목이란 염치와 같은 뜻으로 체면을 말함인데 이것이 부족하면 우리는 면목 없다고 말한다. 면목 없는 사람, 얌체 같은 사람, 얌통머리 없는 사람. 몰염치한 사람, 파렴치한 사람, 후안무치한 사람, 무뢰한, 무뢰배 등 너무나도 많은 말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되었던 것을 보면 과거 우리 사회에서 염치의 비중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 특히 무뢰배라는 말에 눈이 간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요, 같이 일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뜻이니 인간사에서 신의는 바로 예의와 염치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기왕에 천지지간 고귀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얌체 같다거니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듣지 말고 살아야 되겠다.

인생에서 과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목적 이룸만 신경 쓰다 보면 이렇게 얌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사람으로 예의와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던 거다. 얌체들은 박기후인(薄己厚人)은 못하고 대신에 후기박인(厚己薄人-자기에게는 후하고 남에게 야박함)으로 필경 사회에 폐를 끼친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사람이 판치고 있으니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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