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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박사

집의 뜰에 잔디가 자라고 있다. 마당 바위에 앉아 고즈넉이 잔디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빗물을 타고 흘러들어 왔는지 바람결에 날려들었는지 다른 풀들이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마당을 점령해 들어간다. 처음에 잔디 사이에서 기미를 보일 때는 아내가 잠깐만 뽑아도 사그라졌는데 작년 장마 이후론 거개가 잡풀이라 이제는 오히려 잔디가 밀려나는 추세다. 보다 못해 금년 초 바람 부는 추운 날 육거리 약초 상에 가서 잔디에는 해를 주지 않고 잡초만 제거하는 효능 좋은 분말 제재를 사왔다. 유독성이라 약재상 주인이 시킨 대로 이른 봄날 바람 약한 날을 잡아 만에 하나 위험 없도록 바람을 등지고 마당에 고루 약을 뿌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잡풀이 심한 곳에는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잔디 잘 있는 곳에는 아주 살짝 뿌리곤 날씨가 화창해지면 파랗게 일어날 잔디를 고대했다. 그런데 아뿔싸 기다리던 4월이 한참 지났는데 잡초는 물론이고 기다리는 잔디까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이윽고 올라온 잔디를 보니 어렸을 적 보았던 기계총 앓던 친구 머리처럼 듬성듬성하다.

약을 잘못 뿌렸나본데 천상 올해에는 제초기 한번 돌릴 기회도 없겠다. 자란 곳은 무성하고 잔디가 없는 곳은 맨 땅이라 마당을 보기만 해도 심란한데 여기에다 집 앞에 있는 10평 남짓한 밭까지 풀이 무성하다. 풀 나올까봐 비닐로 고랑까지 덮었거늘 놀라운 생명력으로 비닐 사이를 뚫고 뿌리를 내리는 풀의 집요함 때문이다. 내가 무슨 생태학자도 아니고 잡초까지 사랑하는 사해동포주의자도 아니라, 단지 어렸을 적 하교하자마자 밭으로 달려가야 했던 지겨운 기억 때문인지 도대체 밭에 눈이 안 간 덕분도 있다. 주말 농장을 하는 친구는 작물의 안부가 궁금해 거의 매일 신나는 기분으로 간다는데 오가며 눈 한번 주고 지났더니 이제 밭이 잡초를 내세워 그간 무심했던 태도에 저항하는 것 같다.

밭과 논의 이삭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큰다는 말을 교육에 연관해 생각하고 살았으되 정작 내 밭에 실천 안했으니 면목이 있겠는가. 그래도 처음에는 밭에 이것저것 오밀조밀 심어보기도 했건만 작물이 익으면 지나는 할머니들이 망태기에 담아가기 일쑤요, 자동차 통행량이 워낙 많기에 중금속 오염을 염려해 고구마를 심었더니 고랑 덮은 비닐 사이를 비집고 나온 억센 풀이 고구마 잎을 덮고 있다. 대문 안을 봐도 잡초요 대문 밖을 보아도 잡초라 이야말로 草野가 되었다.

이리 빌어먹게 만들어 버렸으니 진정 愚生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행동에 책임을 질 줄도 모르고 소위 값도 못하고 산다. 어리석지 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르기(人不學이면 不知道) 때문이다. 공부를 한 사람이 겸사로 우생이라는 경우도 있고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초야 우생이 이렇다 엇더하리.'로 퇴계선생의 도산십이곡 중 첫 곡 가사도 있으나 나는 문자 그대로 우생이다.

요즘 낮에는 운동하고 밤에는 독서하는 생활습관이 들고 있으니 그래도 무늬는 서생에 들지 않을까. 그러면 면구스럽기는 하지만 草野書生은 되겠다. 초야에 묻혀 책을 가까이 함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선 생활이 안락하여 근심거리가 없어야겠고, 급하거나 아쉬운 일도 없이 마음이 편해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여기에 건강은 물론 최우선이다. 건강해야 야간 늦게까지 책을 열 수 있으며 독서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어쨌거나 책은 가까이 하고 있으므로 이 정도면 書屋 지경에 버금하겠다 여겨, 뜰과 밭에 난 무성한 풀을 보면서 초야우생에서 초야서생을 스스로 바래본다. 선생처럼 더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공부하여 가슴에 시원함이 가득한 경지라면 초야현자(草野賢者)도 되겠지만, 본디 자질이 어리석은 나에게는 멀디 먼 이야기라 장마 그치면 우선 잔디를 비집고 나온 저 풀이나 뽑으리라. 그래도 초야서생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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