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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우리 집 컴퓨터는 신역이 고되다. 필자는 기고문과 강의안 작성으로, 아내는 온라인 수강생 평가와 시상을 수시 기록 정리하려 컴퓨터에 매달린다. 우리 부부의 출입이 제일 잦은 곳이라 가장 넓고 햇빛 잘 들어오는 방이 컴퓨터가 있는 서재 차지가 되었다.

나이 들어가며 변모해가는 아내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제껏 기십년 동안 악기류, 도자 공예, 서예, 스포츠 등을 배우겠노라 의기양양하게 시작은 하건만 도시 작심 2개월을 못 넘기기 다반사였다. 시도하는 강좌만큼 집 안에는 악기며 도구만 즐비하니 종당에는 아이들까지 끈기 없는 엄마 때문에 쓸데없는 살림만 는다고 놀릴 정도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시인 교실을 나가면서는 생판 달라졌다. 우려하던 2개월이 훌쩍 지나 햇수까지 거듭하는데도 열정이 식지 않는다. 어디 그 뿐인가. 이곳저곳 시 창작 교실을 살펴, 일주일에 두 번 씩이나 시 창작공부에 전념하고 되도록 결석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시인교실에 나가려면 매주 2편 이상의 시를 써 합평도 받아야 하므로 이래저래 컴퓨터는 바쁘다.

아내가 시 공부를 하면서 그예 사단이 났다. 새벽에 일어나 컴퓨터 작업에 열중하기에 깨워주겠거니 믿고 마음 편히 누워 있다가 아침도 거른 채 선비교육 나가게 만들고, 주방 옆 식탁에 앉아 지키고 있다가 떠 오른 시상에 몰두하다가 고구마랑 감자를 태우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옛날 허난설헌이 부엌에서 시어 찾기에 골몰하다 치마를 태웠다더니 그와 진배없는 사건이 우리 집에서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침나절 인근 보살사로 워킹을 한다. 출발부터 횡단보도를 건너고자 신호대기 할 때까지는 같이 간다. 그러나 산록에 들어서면 남편은 앞에서 휘적휘적 걷고 부인은 저만치 뒤에서 숙연히 따라오는 형국으로 변한다. 창의성을 높이려면 많이 걸으라고 하더니 글감 정리도 걸으면서 하면 더 낫다. 같은 산길에서 한 사람은 수필 글머리와 내용을 정리하고 또 한사람은 맞갖은 시어를 구상하느라 두 시간 여를 각자 묵언 산행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나란히 집을 나선 뒤 각자 따로 걷다가 집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같이 대문을 들어서는 것이 우리의 산행 모습이다. 사색에 잠겨 걷고 있는 중에 왁자지껄 소란한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면 행복한 침묵을 깨뜨린다고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같다. 나는 찻물로 쓸 요량으로 보살사 약수도 짊어지고 오므로 서로의 목적은 더 달라졌지만 보살사 산행은 시제 작성에 중요한 빌미로 작용한다며 발걸음 가볍게 따라오더니 바지 치수가 줄어들었다네.

단양에서 근무할 때 수염 기르고 꽁지머리를 한 소위 시인묵객이 많기에 鍊丹調陽이라는 역사적 분위기 때문인가 하며 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부분 자유로운 도덕관과 독특한 사고를 갖고 있어 유별나게 여겼다. 그런데 아내가 작성한 시를 들여다보면 초기에는 작고하신 부모님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쓰더니, 요즘은 주로 손녀들과의 경험이 주요 소재이다. 아마 손주들이 글자를 해독할 즈음에 시집을 출간해 선물할 요량인가 본데 삶을 들여다보는 시가 쌓이는 만큼 심성도 순후해 지는 듯하다.

논어 옹야 편에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 君子(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 군자)" 본질 즉 바탕이 꾸밈을 누르면 거칠어지고, 꾸밈이 본질을 누르면 화려하게 겉치레에 흐르니, 본질과 형식이 어울린 이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했는데 아내도 시 공부로 인격 수양이 되어 문질빈빈하게 된다면야. 일단 아내의 시어가 정제되는 만큼 삶의 여유가 많아지고 더불어 남편을 대하는 아량도 넓어지니 시인에 다가가면서 성정(性情)도 깊어지는 듯 보여 오히려 좋다. 잔소리하는 특기 가진 부인들이 좋은 취미 덕에 남편을 너그러이 대하면 두루 좋겠다. 선비 공부에 빠진 필자를 보고 '선비입네'라 시를 지었음에 대하여 '시인입네'라 하는 촌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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