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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한해가 다 가는 마당에 '두루 다행이다'란 말이 뇌리를 자주 스친다. 살면서 그런 말 안 들어본 사람도 없을 터이고 나도 부지기수로 들으며 살아온 말인데 이 무슨 이유로 요즘 자꾸 떠오를까.

 그다지 문재(文才)도 없으면서 언론에 글을 올린 지 어언 4년이 지나간다. 글 쓰는 사람은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다대한 학문적 집적이 있어야 가능한 줄 알았는데 천학비재인 내가 이리공 저리공 그 기나긴 시간을 이어왔으니 스스로도 놀랍다. 피치 못하게 펜을 잡았어도 그간 삶을 창조적 반추하고 순간을 주의 깊게 살피게 된 것은 좋은 점이요, 2주가 1주보다 더 짧고 가깝게 여겨지는 것은 비행기 안의 화장실에서 느끼는 초조한 압박감이었다. 덕분에 독서를 열심히 하게 됐고 마음에 드는 글은 별반 없어도 펑크 없도록 글감이 이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단양에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차제에 국궁을 배우고자 했다. 활을 내며 지역 어르신과도 교류하고 더불어 선비의 육예(六藝) 중 습사를 배울 심산이었다.

 매일 아침 천변을 자전거로 달려 한 시간여 습사의 즐거움을 체득하고 돌아오는 길은 즐겁고 싱그러웠다. 마침 지인에게 받은 진돗개 강아지가 어느 덧 성견이 돼 자전거 앞에서 잘 달려주니 더 좋다. 그런데 이른 봄날 달리던 중에 동네 강아지를 보자마자 갑자기 방향을 바꾸니 자전거 속도 때문에 포장도로 위에 그냥 나뒹굴어 왼 팔꿈치가 골절되고 말았다. 다른 사람은 한 번도 안 부러지는데 나는 이로써 4번이나 골절을 당하니 기가 막힌다. 문병 온 사람들이 위로해 준 말은 '그래도 자주 쓰는 오른팔이 아니라 다행이야'로 거의 비슷하다. 하기야 곤두박이는 찰나에 내 왼 다리가 아스팔트로 내리꽂히는 것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보이기에 황망 중에도 다리를 구부려 다침을 면한 것은 나도 잘한 행동이라 여기는 일이다. 그런데 깁스를 풀고 나니 어깨랑 팔이 굳어 세수는커녕 머리도 못 감는 것이 문제다. 틈나는 대로 부지런히 문지르고 뜨거운 물에 달포 가량 마사지 한 뒤에 간신히 목 뒤로 팔이 가는 이 감격. '내 팔아, 주인 잘못 만나 이 고생을 시키니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모양은 이상해졌다만 그래도 구실을 하고 국궁이랑 다른 운동을 다시 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나이 들어 제일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골프란다. 함께 하는 취미가 없다며 같이 해보자는 아내의 권유로 마지못해 입문한 골프에 점차 재미가 들었다. 초보 때는 페어웨이와 러프의 차이도 모르고 샷을 하다가 보기플레이어가 되고 이따금씩 싱글도 하게 되면서 알수록 어려운 운동이 골프라는 생각이다. 아마 다른 운동을 골프처럼 시간 들여 열심히 연습했더라면 진작 프로선수가 되었으리라. 올해에는 언더파를 해 보자는 벽두 결심을 세웠다. 연습을 무리한 때문인지 멋진 몸을 만들어 보려고 근력 운동을 과도하게 한 탓인지 모르나 오른팔 엘보우가 자꾸 아프다. 참다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팔꿈치 인대에 부분 손상이 갔단다. 6개월 정도 운동을 쉬어야 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하지만 잘만 치료하면 3개월 후에 다시 골프를 할 수 있단다. 수술 없이 주사 치료로도 회복된다니 천만 다행이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든다. 젊었을 때는 내 팔베개를 그리 좋아하던 아내가 이제는 팔을 올리기만 해도 답답하다며 잠결에도 뿌리치지만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게다가 나이 든 사람들의 인사가 '잠을 잘 자는가?'일 정도로 불면 때문에 밤 오는 것이 두렵다던데, 아직 그런 걱정 없이 누우면 금방 꿈나라로 가는 것도 참 다행이다.

 예전에는 이따금씩 '선물 같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선물 받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과연 시간은 선물이다. 이렇게 좋은 선물도 받고 아주 다행이다. 두루 두루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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