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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는 모택동도 즐겨 읽었던 박진감 있는 역사 소설이다. 다시 읽으니 소설 내용에서 각 두령들의 인품과 리더십으로 관점이 옮겨진다. 그런 면에서 눈에 드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옥기린 노준의는 송의 뛰어난 장군이었으나 집사의 모함으로 양산박에 들어와 총병도두령이 된 사람이다. 그가 처형당할 뻔한 것을 구해 준 사람은 고아로 시종이 된 낭자 연청이다. 연청이 근거지인 양산박을 나와 동경 나들이로 연등 구경을 하다가 잘못 관군과 싸움이 일어났다. 아무리 연청의 무공이 뛰어나다 해도 중과부적이라 바야흐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 노준의가 일단의 호걸들을 이끌고 와서 연청 무리를 구해 낸다. 간신히 숨을 돌린 연청이 주인에게 하찮은 종의 목숨을 구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산채를 나오는 가고 감격에 겨워 인사를 하자 노준의는 가볍게 대꾸를 한다. '주인으로 종을 구하러 오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라고.

 이 장면을 읽으며 떠오르는 회한은 키우던 개 두 마리를 보낸 일이었다. 강아지로 나를 따라와 주인으로 믿고 죽을 때까지 잘 데리고 살 줄 알았는데 비명에 보내게 되었다. 한여름 폭염에 이글거리는 옥상에서 고생을 하고, 한겨울 추위에 얼음을 핥으며 갈증을 참던 사정이 안타까워 단독 주택에서는 잘 키우리라 생각했는데 주변 원룸 주민들의 민원으로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아무튼 주인이라면서 두 마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으니 나는 주인도 아니다. 절절한 후회로 내 입에서 먼저 키우던 개에 대한 말을 못하고, 설혹 아내가 개 관련 추억을 말하면 참으로 무정한 사람이라 여기며 대꾸를 못하겠다.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 하니 모쪼록 저 세상에서는 좋은 생을 누리기 바라며 아울러 윤회를 한다면 더 낳은 생으로 환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종 관련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퇴계선생의 증손자 창양이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모유가 부족하게 되자 마침 아기가 있고 먹일 젖도 풍부한 여종 학덕을 유모로 보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선생은 자기 아이를 살리고자 남의 아이를 죽이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증손자를 살리기 위해 여종의 아이를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암죽으로 연명해 약해진 증손자는 홍역에 걸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가문의 대를 잊지 못하게 된 선생의 실망도 클 수밖에 없었다. 16세기의 신분제 사회에서 종의 목숨은 주인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퇴계 선생은 사람의 목숨은 똑같이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가족이 신뢰도가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주종관계이다. 서양은 종사제도 내지 봉건제도로 동양은 주군과 가신제도를 근간으로 봉건제도와 군국제도로 나라를 운영하는데 왕과 신하 모두 규모는 다를지언정 주종관계를 근간으로 주인은 종을 보호해 주고, 종은 주인에게 충성하며 세금을 내는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선거철이면 으레 등장하는 것이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의식에서 비롯된 말로 계몽주의 시대 이후 민주주의로 발전하면서 주인과 종에서 정치가와 국민으로 확장되었다. 비록 백성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을지라도 의식만큼은 백성을 존중한다는 뜻인데 과연 그러한지. 민주주의의 꽃이 선거라 했지만 요즘 정치가들의 일탈된 행태로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가 선거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선하자 바로 태도가 돌변하거나 유권자를 위한다던 사람이 정치를 직업으로 여겨 종당에는 망신당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노준의처럼 주인이라면 아랫사람을 자기 몸처럼 보호해 줘야 한다. 대통령부터 각계각층의 정치가들은 말만 앞세우지 말고 실제 주인처럼 처신해야 한다. 그런 믿을만한 주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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