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동두천 23.5℃
  • 흐림강릉 30.0℃
  • 서울 24.7℃
  • 흐림충주 25.2℃
  • 흐림서산 23.4℃
  • 청주 24.5℃
  • 대전 24.5℃
  • 흐림추풍령 25.6℃
  • 대구 28.9℃
  • 흐림울산 27.3℃
  • 광주 26.0℃
  • 부산 23.5℃
  • 흐림고창 25.6℃
  • 홍성(예) 24.7℃
  • 흐림제주 29.7℃
  • 흐림고산 22.9℃
  • 흐림강화 22.9℃
  • 흐림제천 23.8℃
  • 흐림보은 24.4℃
  • 흐림천안 24.4℃
  • 흐림보령 24.3℃
  • 흐림부여 24.7℃
  • 흐림금산 25.4℃
  • 흐림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8.5℃
  • 흐림거제 24.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9.01.13 15:58:48
  • 최종수정2019.01.13 15:58:48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어느 추운 겨울 날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다급하게 부른다. 여간해서 급한 목소리가 없던 사람이라 즉시 나가보니 차 시동이 안 걸린다며 강의 시간에 늦겠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배터리가 나갔음을 확인하고 내 차에 태워 대학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래도 당신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네'라며 나직하게 고마워하는 소리를 듣는 내 모양새는 어떤가. 벽난로에 땔감 옮길 때 쓰는 귀덮개 모자에 운동용 검정 오리털 파카와 무릎 툭 불거진 회색 기모바지요 신발은 아내가 홈쇼핑에서 구매하여 선물한 방한화이군. 완전 집에서 일할 때의 차림새인데 야단났다! 강의 동안 나는 대학 어느 구석에다 이 복식을 숨기고 있는 담.

늦지 않게 아내를 강의실 입구에 내려주고 나니 내 처신이 난감하다. 기왕지사 요기나 하려 식당에 들어가려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도저히 안으로는 못 들어가겠다. 마침 로비에 의자와 식탁이 있다. 오늘은 온전히 나를 위한 자리라 여기자 마음이 약간 누그러진다.

로비에서 편히 먹기에는 중식이 좋을 듯하여 그 중 제일 값나가는 메뉴로 주문하였다. 외양이 이러니 보상차원에서라도 비싼 놈으로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는 식사 후에 그릇을 셀프 반납하나본데 도대체 위치를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 퇴식구 위치를 물었는데 아뿔싸! 여기서 가장 먼 반대편 구석이란다. 이쪽과 저쪽은 끝에서 끝이요, 무려 100여 미터 되는 거리나 되는데 이 많은 식사 군중을 헤치고 가야 한다. 옆구리에 책 한권을 낀 채로 퇴식구로 걸어가노라니 하던 식사나 할 것이지 어이하여 나를 쳐다보는가· 구부정한 모습은 더 아닌 것 같아 목과 허리를 곧추세우고 발걸음을 크게 띄어 보무당당히 걸어가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과연 학생들이 볼만 하겠다 싶어 웃음이 나온다. 옆구리에 책을 낀 노숙자 모습과 다름없다. 학생들은 구내식당에 어떻게 노숙자가 들어왔는가 하겠군.

나름 의연하게 식기를 반납하고는 표정을 점잖게 갈무리하고 로비에 앉아서, 가지고 간 『공자와 순자』를 읽으며 시간을 죽이기로 하였다. 일어서면 또 남의 이목을 받을까봐 소변까지 참고 두어 시간 몰두하니 점점 책속에 빠져들어 세상이 멀어진다. 어이하여 생존 시에 실패한 공자는 후세 천년 스승이 되었는데, 현실에서 성공한 순자는 사후에 인정도 못 받으며 그나마 법가로 그의 사상을 이은 진나라는 고작 이십 년에 망했을까 하는 명제로 전개되는 책을 쏠쏠히 읽다보니 어느 덧 300여쪽 분량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

드디어 강의가 끝날 시간이라 강의실 앞에서 대기하는데 도무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날은 추워져 다리부터 점차 시려온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오늘은 평소 차 안에 곧잘 두고 다니던 벤치코트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스펀지 목 베게로 무릎을 감싸 추위를 막고 있는데 삼십 여분 뒤에야 아내가 나온다. 사정 급한 줄도 모르고 질문하는 학생에게 답하느라 늦었다는 말을 들으며 시동을 켜자 마음까지 따스해 진다.

집으로 오면서 아내가 다시 고맙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안 그러더니 심리학을 공부하는 때문인지 나이와 더불어 지혜가 늘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고맙다는 말도 자주하여 대견하다.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품위에 안 어울리는 눈총을 받았어도 아내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주어 스스로 흐뭇하다.

앞으로는 기왕의 『도산서원 해설집』과 『시집』 외에 좀 더 두터운 책도 차에 싣고 다니리라. 예기치 않은 외출일지라도 의관을 정제하여 다른 사람의 이목 집중을 받지 않도록 유념하리라.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났건만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