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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모자는 소중한 머리를 보호하는 목적과 함께 하늘을 이는 예절의 표시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고구려인이 책 절풍 등 모자를 썼다고 하며, 조선시대에는 검수적각(黔首赤脚)이라 하여 백정들이나 민머리였을 뿐 모두 모자를 썼으니 이제 그 신분의 방증도 된다. 샤를르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의하면 빠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인 집을 방문할 경우 어디가 주인의 아랫목인지를 빨리 살펴 주인의 심경을 거슬리지 않아야 하는데 방법은 갓 걸린 벽을 찾는 것이란다. 조선 사람들은 아랫목 쪽 벽에 갓을 모셔두기 때문이다. 공식 행사와 빈객 접대 시 의관 정제로 모자는 예와 의를 갖추는 으뜸 복식이었다.

여러 해 전 겨울에 프랑크푸르트의 지하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앞에 있는 체구 건실한 사람이 검정색 롱코트 어깨와 챙 넓은 중절모에 방금 내린 눈을 이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뒤 어느 해인가 졸업식 뒤에 학부모가 아들의 진학 답례라며 선물을 내 민다. 이러실 필요 없다고 해도 교감선생님이 공부 안하던 우리 애한테 희망을 주신 보답이라 하여 하는 수 없이 받아보니 바로 내가 원하던 중절모이다.(해트보다 챙이 약간 좁은 페도라였다) 함박눈 펑펑 내리는 밤에 덕다운 벤치코트에 그 페도라를 처음 쓰고 걷는데 어깨에는 눈이 소복하고 이따금 고개를 숙일 때마다 머리에서 눈이 우수수 떨어진다. 혼자 걸어도 흐뭇한 밤이었다.

골프 연습장에 드라이버가 120M 정도 나가는 연로한 분이 있는데 접수대의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은퇴하신 경레오 신부님이란다. 이름은 들은 터라 다음 날 인사를 드렸더니 그러고도 한참 후에야 겨우 아는 체를 해 주신다. 친해진 뒤야 감곡 분으로 그 곳 성당 초대 신부이신 임가밀로 신부님을 모시고 어릴 적부터 복사를 하다가 서울 소신학교와 대신학교를 나오셨음을 알게 되었다. 가밀로 신부님이 프랑스 루르드 부근 출생이라 엄마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을 바탕으로 감곡 성당에 루르드 성모 동굴을 지었으므로 감곡은 성모 동굴의 원조라는 내력까지 소상히 알려 주신다. 알고 보니 청주교구의 살아 있는 역사로 들을 이야기가 많다. 80대 중반이시라 청력이 안 좋아 그분 말씀은 로비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어느 한겨울 날에 여름 모자를 쓰고 오셨기에 겨울 모자 하나 드릴까 여쭈었더니 '나 모자 많아. 안 쓰는 중절모도 3개나 되는 걸?' 하시며 필요하면 하나 주시겠단다. 지나가는 말씀임에도 그 중절모가 궁금하여 신부님 댁을 방문했더니 이게 웬 일? 방안에 펼쳐 놓은 모자가 중절모 뿐 아니라 베레모와 헌팅캡 그리고 동계용 골프 모자까지 일곱 여덟 개는 된다. 이렇게 많이 필요 없다 해도 이제 버리는 중이니 사양 말라신다.

모자를 써 본 즉 맞춤처럼 잘 맞는다. 모자가 잘 어울린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너무 신기하여 시렁에 모자가 이미 한 가득 있어도 다른 사람 주기는 아깝다. 작년에 골프와 운전을 그만두신다 하여 식사를 대접하려는데 주변 사람들도 합세하여 대여섯 번 식사 자리를 마련한 때문인가. 감곡 출신 가르멜 수도원 박신부님을 안다고 말씀드린 때문일까. 아무튼 주신 모자만 보아도 마음이 풍요롭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 신부님께서 수십 년간 아끼시던 모자를 몽땅 주셨으니 이제 나는 처신을 더 잘 해야 되는 거다. 내야 모자에 닿았던 신부님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팔십 평생 삶의 경륜까지 전수받으면 좋지만, 모자 주신 신부님이 보시기에 흐뭇하려면 말과 행동에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 그동안 애착을 갖고 소장하던 나의 것들도 신부님처럼 주변에 나누어야 보답일 텐데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받을 땐 좋았는데 중절모에 대한 욕심으로 의발전수(衣鉢傳授) 제자 비슷한 모자전수 제자가 되게 생겼다. 이거 참 야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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