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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박사

3년 전에 고교 동문회 총무 정민영 서원대 교수가 동아리를 구성하면 현금 지원을 하겠다기에 과거 동기 테니스 모임을 창단했던 경험으로 골프 치는 친구들을 모았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모두 반가워하여 월례 모임에 비가 올까 걱정할 정도로 발전했다. 첫해를 創業 단계로 즐기다가 정규호 청주대 교수가 회장을 이었는데 진중하고 치밀한 성격답게 守成을 잘한다. 여기에 서울 박채서 동기가 호랑이 등의 날개가 되었다. 이 친구는 6년의 억울한 囹圄 동안 '꿈꾸는 다락방'의 제임스 네스멧 소령처럼 생생한 골프 상상으로 수감의 고통을 견뎌냈다. 타이거 우즈도 못 한 age shooter요, 프로 이기는 아마로 대회 경험을 더하니 모임의 격까지 달라진다.

작년 아트밸리에서 풍성했던 첫 대회에 이어 올해는 낭성의 골드나인에서 대회가 열렸다. 지역 원로와 언론인 체육인 그리고 서울 동문과 연예인까지 총 70여 명이 참가하니 매머드급이다. 그렇지 않아도 라운딩 전날엔 잠을 설치는데, 스윙 교정 후 참가하는 대회라 더욱 설렌다. 기다리던 10월 29일에 아내의 백을 싣고 늘 하던 대로 여유 있게 출발했다. 단풍으로 물든 산성 가을 길은 아름답고 카 스테레오에서 나오는 김미숙의 나긋한 목소리에 아내의 콧소리로 차 안 분위기도 따습다. 넉넉한 시간이라 새 퍼터가 익도록 연습하고 몸도 풀라고 조언하며 트렁크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차 뒤에서 아내가 비명을 지른다. '여보 내 골프백 어디 있어?' 뒤를 보니 백이 있어야 할 자리가 휑하다. 아뿔싸! 대문 앞에 놓고 그냥 왔나 보다. 황급히 집으로 내달리는데 아내의 입은 급하고 톤도 더 높아진다. 도착해 보니 필경 고작 40분 사이에 지나치던 어떤 놈이 집어 갔다. 차 뒤에 둔 백을 놓고 출발해 백을 잃어버렸다던 남의 이야기가 이제는 나의 일이다. 골프 못 친다고 펄펄 뛰는 아내를 고생한 진행팀 때문에 가야 한다며 궁즉통의 방법을 냈다. 마침 딸애가 두고 간 백을 쓰는 건데 드라이버가 없어 자동차 경주하듯 다시 프로샵으로 내달렸다. 급박한 티업 시간이라 에누리 운운은 꺼내지도 못한 채 비싼 드라이버를 낚아채곤 골프장으로 날았다. 아내에 대한 평소 내 마음의 반증이라고, 백에 넣은 새 바람막이가 아깝다고, 안에 챙겨 둔 캐디피는 어쩌냐며 날벼락 맞았다고 쏴대더니 아니나 다를까 예전 서운했던 일까지 속사포로 쏟아낸다. 성질난 여인은 왜 이리 머리가 좋은 건가. 화창한 가을은 밖의 풍경일 뿐 차 안에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쓴 남편이 고개 떨군 채 운전하고 옆에서 포악질해 대는 아내는 영락없이 Xanthippe다. 억울하지만 내 잘못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나마 차 안에 물동이가 없는 게 다행으로 묵언 수행 뿐이다. 아내를 내려 주고 라커룸에서 진정하고 있는데 전화다. 이 기분으로는 라운딩 못 하겠다는 짐작 대신 '여보! 백이 카트에 실려 있어. 꼭 뭐에 홀린 것 같아'라니. 경황을 살핀즉슨 아내가 차에서 내리기 전에 이미 백을 옮긴 캐디의 날랜 손에서 비롯된 촌극이다. 그 때문에 나는 왕복 1시간여 식은땀만 흘렸고, 아내는 소크라테스의 부인역을 완벽하고도 넘치도록 해냈다.

모임 마치고 오며 아내가 운을 뗀다. 그 정황에도 공에 집중함이 신기하다며 애먼 남편에게 악다구니만 했다고. 아침이면 선비처럼 숙흥야매잠과 경재잠을 외우고 퇴계 선생 공부를 해서 그런지 전처럼 물어 먹는 대꾸나 불같은 성질 안 냈으니 이제는 무던해지지 않았냐며 빙그레 웃었다. 후한 동반자 덕에 1오버의 스코어라 골프 백 사건만 없었다면 자칫 언더파를 쳤을 날인데 과속으로 딱지가 날라오면 어쩐담. 그래도 하나! 아내가 미안했던지 뭐 필요한 거 없냐며 큰애가 준 백화점 티켓이 있단다. 꿍쳐둔 거라도 勿失好機 아닌가. 덕분에 아빠는 세일 안 한 골프 티를 입고, 둘째는 값비싼 새 드라이버를 잡는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역시 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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