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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부부간 대화 양상이 나왔다. 살아온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예가 있는데 결혼 기간과 대화를 안 하는 부부가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부부는 서로 닮는다는데 그만큼 상통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굳이 대화를 안 해도 의사 표현에 문제가 없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 맺어져 가정을 꾸렸건만 뜨거웠던 사랑도 3년 정도면 서서히 식어가고, 이후에는 정으로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부부들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말없이 지내다가 만약 대화할 필요가 있으면 카톡으로 대신하는 부부도 있다니 솔깃해진다. 대면할 기회마저 회피한 채 각자의 생활을 고수하는 명목상의 부부가 더 편해지는 것이다.

남녀 간의 이야기 특히 규방 지사는 외부로 발설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외모만큼이나 부부간의 이야기는 다양할 수밖에 없겠으나 톡 소통을 들으면서 선생의 편지가 떠 오른다.

山天齋 李咸亨(字는 平淑, 1550~1586)은 순천 사람으로 20세 무렵에 69세의 퇴계 선생을 찾아가 도산 서당에서 사사한 제자다. 선생 말년에 심도 있게 강술한 것이 心經이요, 그 심경에 주석을 달아 「심경 강록」, 「심경 질의」 등을 저술할 정도로 高弟였다. 1년간 수학하고 귀가하는 제자에게 선생이 '이 사람 평숙! 이 편지를 도중에 열어보지 말고, 사립문 앞에서 열어보게'라 하며 한 통의 편지를 주신다. 피봉에 도차밀계간(道次密啓看)이라 하여 도중에 은밀히 열어보라는 지시도 있다.

당시 편지는 사사로운 내용일지라도 선생의 말씀일 경우에는 제자들이 배독(拜讀)이라 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 편지를 펼쳐놓고 공손히 읽기도 하고, 편지에 관하여 토론을 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리하여 선생은 제자 월천 조목에게 편지를 하면서 이 편지는 아직 공개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도 한다. 이로써 보면 고봉과 사단칠정론 관련으로 8년간 주고받은 117통 편지는 두 분의 조용한 소통이 아니라 조선 선비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라 이 내용을 모르면 지식인 그룹에서 대화도 어려울 정도였다.

선생은 편지에서 공자 맹자의 말씀을 들어 천지가 있고 난 뒤에 부자가 있고, 부자가 있은 다음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다음에 예의를 둘 곳이 있다고 말하고는 만물이 있고 난 뒤 부부가 있음을 강조한 뒤에, '내가 일찍이 겪은 일을 말한다면, 나는 재혼을 했으면서도 참으로 불행했네. 그렇지만 나는 감히 댁을 박대하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잘 대접하려고 수십 년 동안 갖은 노력을 다했네. 그 사이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고 번거로워 참기 힘겹고 민망한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 정을 돌릴 수 있는가. 인간이 지켜야 할 중대한 인륜을 저버리고 홀어머니와 나에게 맡긴 처부모에게 근심을 끼칠 수 있는가? (중략) 그대는 마땅히 몇 번이고 깊이 생각하여 허물을 고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네. 또 여기서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면 학문은 어떻게 할 것이며 실천은 할 수 있겠는가. 군자의 도는 부부생활로부터 이루어진다네.'라 말한다.

아마 이함형 부부가 금슬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서 듣고 편지를 준 듯한데, 제자는 대오각성하여 스승의 가르침대로 부부 관계를 돈독히 하였다고 한다. 이 서간문은 1577년에 세상을 달리한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던 아버지 손암 이식(1522~1587, 이조참판 역임)에 의하여 다시 퇴계 문중으로 돌아오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인륜의 기본이 부부생활이요,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하는 데서 예의가 생기고 학문의 빛도 발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제자를 깨우치기 위하여 나이도 한참 어린 제자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가정사를 토로해 내는 선생의 겸손은 더 고매하게 빛난다. 선생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부부간에 톡으로라도 통하니 그나마 다행이나 기왕이면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좋겠다. 그것도 선생처럼 상경여빈(上敬如賓) 하려는 결심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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