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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해를 선물로 더 주심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제일 먼저 든다. 30대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 중에 벌써 세상을 달리하신 분이 10여 명을 훨씬 넘는다는 말을 들으며 송연해진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어 하루하루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고 또 미련없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신년 벽두에 갖는 마음가짐을 통상 '옷깃을 여민다'라고 표현도 하는데 많은 말 중에 하필 옷깃을 여민다라고 할까. 선비가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에 옷매무시를 단정히 가다듬는데 이 경우에도 옷깃을 세 번 여민다고 한다. 원래 한복의 옷고름이 동작 중에 자주 풀어지기 때문이겠지만, 외부의 상태는 물론 마음마저 주일 무적(主一無適)의 경건한 태세로 유지하려는 의지가 표현됐으리라. 불가(佛家)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여 최소한 70억분의 1의 확률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친다. 사람과 무의식중에라도 맺게 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가 있다. 정작 옷깃은 의복의 목둘레에 돌려대어 앞으로 여미는 부분이라 다른 사람과 옷깃을 스칠 정도라면 가까워도 한참 가까운 관계여야 한다. 소매깃이라면 저잣거리에서 지나치다가 이 사람 저 사람과 부지불식간에 스치는 경우가 나오겠지만 옷깃을 아무하고 스치기란 쉽지 않다. 부부와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옷깃을 스칠 정도로 다가갈 수가 없으므로 다만 가까이 대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 되겠다.

한복에는 옷깃과 더불어 옷섶이 있는데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착용할 때 앞을 여밀 때 중심부로 오는 천을 말한다. 옷섶은 행동 중에 쉽게 벌어지므로 속의 옷이 드러나지 않도록 갈무리하거나 어른을 모시고 공손히 자세를 취할 때 매무새를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마음가짐을 공고히 하고자 할 때는 옷깃을 여민다는 말보다 옷섶을 여민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싶기도 하다. 외부의 찬 공기를 막아 몸을 보호하거나 엄숙한 자리에서 자세를 공손히 취할 때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려면 옷깃보다 옷섶을 먼저 단속해야 하지 않겠나.

어렸을 적 정월 대보름날 동네 근처 동산에 모인 할머니랑 아주머니들이 짚단을 엮어 달 불을 태우며 점차 솟아오르는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경건하고도 간절히 기원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정초에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셨던 이분들도 산에 오르기 전에 세수하고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으리라.

국량 넓은 위인이라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련만 시골 서생은 나와 가족의 안위에 대한 소망이 우선이다. 옷고름 여미고 수양한 결과 도량이 조금이라도 깊어져 상대해 본 사람들이 가까이 할 만하다 인정해 주면 고맙겠고, 가족 간에 제일 불편한 관계가 수숙(嫂叔)이라는데 오라버니 같은 시아주버니로 자리하면 좋겠다. 취미인 골프로는 에이지 슈터(age shooter)를 이루는 해가 되면 좋겠는데 그리하려면 몸 관리를 더 잘해야겠지.

사회에 대한 바람이라면 각계 지도층들은 박기후인(薄己厚人)과 선우후락(先憂後樂)의 마음가짐으로 언행에 모범을 보이고 직분에 책임 있는 자세를 지닌다면 상호 신뢰가 깊어지겠다. 사람들은 전전긍긍하는 태도와 얇은 얼음을 밟는 자세로 조심하여 잘못을 멀리한다면 분명 편안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미 500여 년 전에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바라신 퇴계 선생의 소망도 아름다운 사회의 실현에 있었다. 세인들의 조심하는 태도가 바로 옷깃을 여미는 마음이리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 상대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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