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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3.12 15:45:40
  • 최종수정2023.03.12 15:45:40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인간에게 장신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대표적인 장신구는 반지와 팔찌이며 여름날 젊은 여인의 발목에서 발찌도 간간이 눈에 띈다. 반지는 권위, 충성과 결속의 상징이자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며, 상대에게 속해 있다는 구속의 증거도 된다. 팔찌는 오래전부터 인류가 애용해 온 장신구로 장식의 목적 외에 마귀를 쫓고자 착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신석기 시대 조가비 팔찌가 등장한 이래 조선 시대를 제외하고 부녀자들의 대표적 장신구로 자리하고 있다.

귀금속 가게를 운영해 오던 막내 여동생이 건물주가 업종을 바꾸려는 때문에 점포 정리 겸 반값 세일에 들어갔다. 우리 형제들도 도와주고자 평소 같으면 언감생심 하던 고가의 금붙이를 살폈고 이를 물실호기로 나선 사람들은 집안의 세 분 며느리이다. 막내 제수씨는 팔찌를 옐로우, 화이트로 두 개나 사고, 둘째 제수씨도 눈 딱 감은 남편 덕에 화려한 물방울무늬 아롱진 명품 팔찌를 팔목에 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름 아닌 나다. 육십 평생, 마음 놓고 돈을 써 본 적이 없고 팔찌에 대한 필요성을 공감 못 한 때문인지 주저하다 그만 구매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사실 아내가 패물을 지니지 않게 된 사연이 있다.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아내 손에 이끌려 막 완성 중인 3층 연립주택 앞에 서게 되었다. 아내가 말하기를, "여보! 우리가 살 집이 저기야." 그래도 집은 남편이 마련해야 하는데 군에 있는 남편을 제치고 혼자서 집을 장만했다는 거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이런 집을 어떻게 샀는가 물었더니 결혼 때 받은 패물을 몽땅 처분했단다. 이 패물 사건은 그 뒤로 부부싸움의 단골 메뉴가 되긴 했다만 아무튼 아내는 그렇게 집을 키워갔다. 운동과 공부밖에 모르는 철부지 남편에게 점차 넓은 집과 더불어 차까지 사 주었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살이에 남편 뒷바라지를 하려니 휘황한 팔찌는 고사하고 변변한 반지도 끼지 못하고 살았다. 반지는 불편하여 안 낀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우리 아내는 작은 귀걸이 정도로 족하다고 무디게 생각을 굳혔던 거다.

그런데 얼마 전, 동서들은 남편이 나서서 팔찌도 색깔별로 구색 맞춰 사 줬다는데 당신은 대체 뭐 하느냐며 잔뜩 볼메어 쏜다. 자! 타이밍을 이미 놓쳤는데 이거 난감하게 되었다. 며칠 지나 둘째 딸이 내려 온 기회를 틈타 그간의 정황을 살며시 이야기하며 여인으로서 네 의견은 어떠한가 물었더니 역시 예상한 바의 답을 낸다. 이왕지사 욕을 들을 만큼 들었는데 이제 와 사 준들 빛 보기는 애당초 글렀으니 그냥 버티라는 냉정한 딸년이다.

잔뜩 화난 아내를 무심한 척 상대하려니 좌불안석이요 심사는 갈수록 불편해진다. 조카들이 취직하면 큰아버지로서 양복 한 벌을 선물해 주는데, 마침 취직한 조카딸이 고모를 생각하고는 옷 대신 귀걸이를 사달라는데 아내의 부은 얼굴이 또 걸린다. 하는 수 없이 둘째 딸한테 너도 이참에 귀걸이 하나 고르면서 반드시 엄마를 모시고 가서 엄마의 눈이 꽂히는 팔찌를 슬그머니 걸어 드리라 했다.

다 늦게 무슨 팔찌냐며 싫다고 버티긴커녕 여동생의 가게라며 팔찌 찬 팔목 사진과 함께 '엄청 예쁘지? 고마워'라는 문자가 온다. 늦게나마 체면치레는 했으니 다행히요, 이제 부은 얼굴을 안 보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동생들보다 먼저 팔찌랑 발찌까지 해 주었더라면 콧노래 흥얼거리며 팔목 발목 번쩍번쩍 자랑삼고자 여름을 고대하고 동서들에게 은근히 뻐길 수도 있었으련만. 공연히 망설이다 괜한 고생을 했다.

마침 며느리들이 차도 마실 겸 우리 집에서 모인다기에 각자 팔찌를 차고 오라 했다. 서로 팔목을 내보이며 팔찌 품평으로 거실 가득 웃음꽃 번지니 좋다. 모두 모두 남편 건사와 아이 키우며 알뜰살뜰 살아가느라 고움이 주름으로 바뀌어 가는데 비록 백만 원을 상회하는 금팔찌이건만 속박을 이처럼 감사하니 고맙다. 지금처럼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살면 되지 뭐. 광채 나는 팔찌처럼 빛나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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