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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

신발장을 열다가 몇 년 동안 위층 선반에서 잠자고 있는 구두들에 눈이 간다. 대학 때 아버님이 고추 팔아 사 주셨던 검정 구두를 시작으로 옷 색깔에 맞춰 들인 덕에 여름 구두까지 도합 5켤레가 고이 모셔져 있다. 대부분 1980년대 중반에 사들였으니 내 발과 함께 한 시간이 어언 35년가량이다. 이 구두들과 전국 곳곳을 누볐는데도 오랜 기간 잘 버텨주어 고맙고 정겹기도 하다. 본디 아버님이 물건과 기계를 꼼꼼하게 잘 챙기심을 보고 배워 내게 속한 물건을 아껴 쓰는 버릇을 들였더니 그리 오래되었어도 구두약을 자주 발라주었기 때문인지 외관도 멀쩡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평생을 구두 한 켤레로 지내셨기에 이 못난 아들도 한 켤레로 살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겨울 구두는 물론 여름 구두까지 검정과 브라운 계열로 준비하여 신발장이 부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두 신을 적마다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이었건만 교육청에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면서 그런 미안한 마음도 무디어갔더랬다. 퇴임을 하여 양복 입을 일도 적어 철철이 맞춰 입느라 사들였던 그 많던 남방과 넥타이도 버렸거늘 신발장에 있어 눈에 잘 안 뜨이던 구두가 남아 있었다.

이제 발에 편한 캐주얼화를 신고 다님에 상태가 가장 양호한 구두 한 켤레만 두고 나머지는 죄다 버리기로 작심하였다. 서재에서 먼지만 쓰고 있던 책들을 이미 한 트럭 남짓 실어 보냈고, 옷 버릴 적에 고민도 했거늘 구두쯤이야. 현관 문께 내놓으면서 다른 물건과 함께 치우도록 아내에게 부탁하고 외출했는데 귀가하여 보니 구두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평소 버리는데 과감하여 쇼핑백과 같이 금방 필요한 것도 기를 쓰고 버리는 아내의 눈에도 구두의 상태가 워낙 좋은데다가 혹 소용될 때가 있을 것 같아 버리지를 못하겠더란다. 한 켤레는 예비로 두었으므로 버려도 괜찮다 했건만 벌써 2주간을 구두가 현관에서 신발장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침을 받지도 못하고 저러고 있다. 버리기가 이리 힘들다.

분명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길지 않을 터라 생각하니 그동안 아껴 갈무리했던 물건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우연히 배워 내 인생을 살찌웠던 젓대와 단소 등 대풍류랑 거문고 해금 등 줄풍류, 그리고 뚝심 깊고 꿋꿋이 사들였던 다완과 다탁 등 차 풍류를 나만큼 소중히 여길 사람이 있을까나. 이것들도 서서히 정리할 수순이라 생각하니 처연해진다. 누구 말대로 인생 별거 있나 싶기도 하지만 내게 보람과 기쁨을 주었듯 자식과 손녀들의 삶에 윤활제로 작용할지 또 모를 일이긴 하다.

주자의 시 가운데 '은거하여 무엇을 더 구하리오'라는 말과 퇴계 선생의 자명 중에 '조화를 타고 돌아가니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라는 내용을 염두에 두어 긴요하지 않거나 손에서 멀어진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멀쩡한 구두를 소용없다고 치워 버리고는 발에 편한 여름 샌들을 구매하려고 인터넷을 기웃거리니 마땅치 않은 일이요, 오래되어 유행 지난 바지를 정리하자마자 요즘 유행인 바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다. 구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바지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도 지름신과 또 투쟁하고 있고, 습관처럼 저지르는 충동구매도 이제는 안 하도록 조심해야 하는데 또 되풀이하고 있다.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앞으로 얼마나 사용할 기약을 예측하기도 어렵거늘 기 십년 사용할만한 두꺼운 통가죽 벨트로 바꾸고 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所用과 豫斷이 구매 시의 긴요 사항임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 어리석음이여!

이참에 살면서 안 좋았던 기억도 버리는 노력을 해야겠다. 내 삶에서 버릴 것들을 색출하려면 응당 操心과 명상이 필요하겠지만 기왕이면 기분 좋은 추억으로 갈무리하는 삶이 좋지 않겠는가. 조심은 잡을 조 마음 심의 속뜻을 갖고 있으니 마음을 잘 잡으면 되렷다. 예전 어른 들이 구방심을 하였듯 물건 구매에 우선 조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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