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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세안과 면도는 일과 시작의 필수 불가결한 절차이다. 면도를 안 하면 추레하게 보이고 여기에 코털까지 더부룩하면 아무리 잘 씻어도 추한 이미지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따금 콧구멍이 간지러워 무의식중에 손이 갈 때가 있다. 화장실 거울에 유심히 비춰보면 어김없이 코털 한 가닥이 삐져나와 코를 괴롭힌다. 아침에 잘 다듬는다고 했건만 요놈은 살벌하게 돌아가는 전동 코털 깎기 날용케 피하고 세상에 나왔구나. 점잖은 자리에서 대화 중에 앞 사람의 코털이 거뭇하게 나와 있으면 복잡한 감정이 스미는데 주인에게 존재를 확인시키려는 나의 코털 한 가닥도 상대에게 분명 그런 느낌을 줄 것이다.

중년이 지난 남성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5알파 환원 효소와 결합해 만드는 DHT라는 대사물질 양이 늘어 코털이 더 길게 자란다. 이 DHT가 콧속 모낭의 성장촉진인자(IGF-1)를 생성하여 결국 털이 더 길게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머리카락은 얇아지고 눈썹이나 코털은 길고 두껍게 된다. 그러고 보면 옛적 신선은 얼핏 긴 눈썹이 두드러지는 용모이나 필시 코털도 길고 두꺼웠을 텐데 요즘처럼 성능 좋은 코털 깎기도 없었을 테니 코털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참고 살았겠다.

눈에 거슬린다고 코털을 잡아 뽑는 것은 위험한 처사이다. 코털은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온·습도 조절과 더불어 이물질을 걸러 우리 몸의 1차 방어막을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코는 세균이 몸에 들어오는 핵심 통로이므로 세균이 득시글한 곳이다. 코털이 피부 깊숙이 박혀 있어 모공도 크므로 잘못 뽑았다간 세균감염으로 인한 상처의 위험 또한 크다. 세균이 상처에 들어가면 염증이 생겨 코 주변이 붓기도 하고, 자칫 염증 물질이 돌아 뇌막염이나 패혈증까지 일으킬 수 있다니 조심해야 한다. 가렵다고 무턱대고 잡아 뽑을 수도 없는 거다.

인체의 터럭 중에 눈썹이나 코털은 머리털처럼 자라지 않고 외관상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구실을 한다. 눈썹은 눈으로 들어가는 땀과 빗물 등을 막고, 코털은 몸으로 들어가는 외부 세균을 일차 차단한다. 드러나는 것이 모두 중요한 것은 물론 아니건만 이렇게 코털 한 가닥도 우리의 일상 리듬을 망칠 때가 있으니 작다고 무시할 일은 결코 아니다. 일제에 잡힌 독립운동가들이 제일 두려워한 것이 대나무 꼬챙이로 손톱 밑을 찌르는 고문이었다고 하니 우리 몸을 괴롭히는 것은 크기와는 상관없다는 거다.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도 그렇다. 커다란 잘못만 우리의 본성과 양심에 저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디작은 잘못도 본성을 해치는데 똑같은 결과와 아픔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큰 잘못과 마찬가지로 작은 잘못도 방심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한다. 선비들이 자신을 수양하면서 정미극고의 자세로 공부하고, 매일 존양과 성찰로 자신을 닦고자 노력한 것이 이 때문이다. 드러난 코털이야 가위로 자르면 그만이지만 내면에서 자라는 좋지 못한 마음은 무엇으로 자른단 말인가. 존심(存心)도 어렵거니와 구방심(求放心)도 마찬가지로 중요함을 살면서 수시 깨닫게 된다.

매일 저녁에 차와 더불어 음악을 들으며 그날을 되새기는 것은 하루의 반성이겠고, 저녁에 읽은 책 내용을 이튿날 산록에서 반추하는 것도 분명 성찰이겠으나 어디 선인들의 절치부심한 자기 수양에 비할쏜가.

밖으로 나온 코털은 뽑지 않고 코털 깎기나 코털 전용 가위를 이용하여 삐져나온 부분만 다듬는 게 좋다. 여러 합목적적 이유로 열쇠고리에 자그마한 맥가이버칼을 달고 다니는데 기왕 이 칼이 코털 다듬기와 더불어 남명 선생의 경의검(敬義劍) 역으로 심성 수양에 더 이바지하도록 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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