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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4.24 15:22:36
  • 최종수정2022.04.24 15:22:36

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1569년 69세의 퇴계 선생이 선조 임금에게 물러남을 허락받아 고향으로 갔던 700리 귀향길 걷기 재현 행사가 올해로 세 번째 진행됐다. 충북 지경만큼은 함께 해 보고자 작년 4월 11일에는 충주 가흥창에서 관아까지의 바람 몰아치는 봄 길을 걸었다. 올해는 4월 12일 충주에서 제천 청풍길과 13일 제천에서 단양 향교까지 작년보다 하루를 더 걸었으니 내년에는 전 구간을 걸을 수 있으렷다.

일찍 더워진 날씨로 산수유와 개나리 그리고 벚꽃까지 동시 개화해 사방이 꽃 천지라 눈이 바쁘다. 여의도 윤중로보다 더 우거진 청주 무심천 변 벚꽃 길을 라이딩했기에 웬만한 꽃 거리는 눈에 안 차는데 제천 청풍의 벚꽃은 차원이 달랐다. 낮에는 흐드러진 벚꽃에 눈이 부셨거니와 밤 벚꽃 아래에서 경기 지부 위원들과 고혹적인 남방 조영님이랑 찻자리를 만들어 최 위원이 정가를 부르고 나는 대금과 단소를 잡은 것도 흐뭇한 기억이다. 낮에 본 미진함을 밤에 오로지 하여 채웠음에도 비 내리는 새벽 꽃길이 부르니 다시 나갈 수밖에 없다.

비를 담고 하염없이 떨어져 질펀한 꽃길을 홀로 누리며 걷는데 멀리 꽃그늘 아래로 연세대 명예교수이며 퇴계학 전문가이신 이광호 교수님이 내려오신다. 어제 점심 자리에서 여쭸던 엽등(렵等)에 관련한 윤집궐중(允執闕中)을 다시 질문했다. 엽등은 주자와 퇴계 선생도 제자들에게 학문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항이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중심을 잡아 기본을 다지지 않고 건너뛰기식으로 공부하면 대체를 알 수도 없거니와 자칫 운기 행공 잘못으로 주화입마에 드는 격이라 조심해야겠다. 이를 예방하는 것이 바로 윤집궐중이요, 격물치지의 공부인데 모름지기 四書를 차근차근 공부하는 것이 요령이라 하신다. 물은 웅덩이를 채운 후에야 앞으로 나가는데(영과이진-盈科而進) 눈으로만 좋은 글을 접하며 자기 발전에는 노력하지 않는 요즘 세태도 엽등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움과 행동이 밸런스를 갖추지 않으면 종당에 생각이 일보다 앞서면 창성하고, 일이 생각보다 앞서면 패망(謀先事則昌 事先謀則亡―'說苑')하는 모양으로 결론 나겠다. 한 식경 가량 청량한 새벽 공기를 머금은 빗물과 더불어 떨어지는 꽃잎이 어우러진 노교수의 학문 강의로 도처의 향기가 함께 스며들어오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숙흥야매잠의 단계별 해석과 선생의 완락재 시 해설에 눈이 시원해진 느낌은 꽃비 솔솔 내리는 길 때문일까? 노교수님의 향기 나는 설명 때문일까.

독서에 조심할 것이 ostrich reading(타조 식 읽기)이라면 배움에서 조심할 것은 엽등이니 정미극고의 자세로 절치부심해야 하는 것이 특히 공부이겠다. 청풍에서 장회나루까지 가는 배 안에서도 엽등과 윤집궐중을 복기하노라니 옥순봉의 빼어난 자태와 구담봉 은거인 성암 이지번도 크게 다가온다. 일행을 따라온 카메라 기사가 갓과 도포로 의관을 갖춘 우리에게 뱃머리에서 멀리 앞을 바라봐 달라 부탁한다. 갓양태를 뚫고 들어오는 빗물을 차갑게 맞으며 서 있는데 분위기에 취한 옆의 모 언론사 홍 국장이 퇴계의 시를 노래하려는데 대금으로 분위기를 맞춰 달라고 한다. 하필 청 나간 대금일지라도 비닐 테이프로 감고 뱃전에 서 있으니 멀리에서 보면 혜원의 '선유도' 모습과 흡사하겠다.

둘째 날 점심때 초등생 자매와 합석하며 이름을 물었는데 노정옥과 정아란다. 아까 벚꽃 휘날리는 정자 마루에 앉아 '大學'을 암송 노래해 기특했고, 성학십도를 외우고 있다는 말에 귀를 의심했던 터였다. 그런데 어른인 내가 먼저 수저를 들 때까지 예쁜 눈을 깜박이며 조용히 기다리는 것도, 언니가 먹은 뒤에야 수저를 잡는 동생도 놀라운데 엄마에게 '진지'라 하는 언어 구사에 다시 놀랐다. 학생들에게 선비 교육을 하는 나이 든 선생이 어린 것들에게 놀랐다. 아니 요즘 엄마 같지 않게 자식을 이리 잘 키우고 있는 효문화원 황상희 박사에게 화들짝 놀랐다.

올 귀향길은 여러모로 꽃길을 즈려 밟으며 걸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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