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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어린 시절 동네 어른에게 받은 토끼 한 마리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토끼장까지 만들어 주며 잘 키워 보라 하셨다. 토끼털이 배설물로 더럽혀지는 것을 막고자 토끼장 바닥 판자의 틈을 벌려 오줌과 똥이 잘 빠지도록 안배도 해 주었다. 새하얀 털에 빨갛고 동그란 눈이 예쁘고 오물오물 먹는 모양이 귀여웠다. 그래서 토끼 먹이를 뜯어다 주려고 학교 끝나기 무섭게 들판으로 내달리곤 했다. 이렇게 정성껏 먹거리를 조달해 주었건만 이쁜 토끼는 제대로 크지 못하고 얼마 뒤에 죽고 말았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그렇게나 열심히 먹이를 주었는데도 굶어 죽었다는 사실이 어린 눈에 매우 의아했었다.

최근 반추에 관련된 내용을 들었다. 반추란 되새김질 작용으로 보통 4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반추위(反芻胃)를 가지고 있는 기린, 사슴, 소, 양 따위의 초식동물에 해당하는 말이다. 맹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기회 있을 때는 먹이를 저장해두고 시간이 있을 때 되새김질해 소화하는 생존법이다. 이러한 생존본능으로 네 개의 위가 생긴 것인데, 신기한 것은 위가 한 개밖에 없는 토끼도 반추를 한다고 한다. 토끼가 초식 위주 동물이기는 하지만 반추위를 가진 동물도 아닌데 어떻게 반추를 하겠는가. 가만히 보면 자기의 배변을 되먹어 영양분을 재흡수하는 소화 행위를 한다니 이 또한 반추에 해당하는 모습이다. 토끼의 이러한 식습성을 모르고 너무 애지중지하여 영양소 재흡수 기회를 앗아버려 결국 죽게 만들었나 보다.

반추동물처럼 우리 인간도 반추하고 있을까. 위가 하나밖에 없으니 당연히 반추 활동을 하지 않을 듯하나 인간 역시 반추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다만 위에 저장된 음식물을 식도로 통과시켜 되씹는 것은 아니고 머리로 반추를 하는 것이다. 뇌에 저장된 기억을 되살려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긍정적 반추이겠고, 과거 내용을 살펴 앞으로 바람직한 부분으로 개선한다면 창조적 반추가 되겠다. 살다 보면 좋은 기억도, 기억하기 싫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즐거운 추억이 많을수록 더 행복하기에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보내고자 노력을 한다. 그러다가 좋지 않은 결말을 맞기도 하고, 이러저러한 상실감으로 회한이 가득하게 되면 응어리진 과거 기억을 끌어내고 있으니 이는 불행한 삶이다. 좋지 않은 기억의 상처는 오래가므로 그 기억 속에 머무르게 되니 계속 이어지는 불행감이 우울증까지 야기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잘 나가는 기생집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단다. 어여쁜 기생의 마음을 얻고자 혈안인 한량은 재물로도 환심을 얻지 못하면 급기야 자기의 앞니까지 빼 주곤 했단다. 나이 들어 은퇴한 퇴기에게는 홍안으로 피부에 윤기 흐르던 시절 정신 홀린 서방님들의 앞니가 담긴 봉지만 남는다. 인적 끊겨 휑한 집안에서 떠나간 임들의 이빨을 어루만지며 과거를 그리워한 때문인지 퇴기들은 여염집 여인보다 수명이 짧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잘못했을 경우 잘못을 깨달으면 반드시 고칠 결심을 하면 될 것이다(지과필개知過必改). 그러나 자기 자신을 변명하기 급급하거나 잘못에 대하여 동의를 하지 않으면 잘못을 고치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는다(과이불개過而不改). 증자와 같은 성인도 하루에 세 번 반성했다는데 우리 같은 필부들은 반성을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여건을 최선으로 만들 뿐 아니라 최선의 여건을 갖추려 미리 노력을 한다는데 기왕이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과거를 반성하는 창조적 반추가 더 나은 삶을 위한 자세이겠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과거를 살피는 것도 일종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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