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깔따구

2019.10.17 14:00:38

산비탈 밭에 있는 농막에서 지내다 보면 무서운 것이 있다. 밤에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무섭다. 잡목 숲에서 짐승 뛰는 소리가 나면 멧돼지일까 봐 귀를 쫑긋 세운다. 고라니는 생긴 것은 예쁜데 그 우는 소리는 아기 소리 같아 괴이하다. 밤에 고요한 마음을 훔쳐 간다. 정말 무서운 것은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깔따구다.

깔따구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사방팔방으로 날면서 정신을 어지럽힌다. 귓속에 안식처를 찾았다는 듯이 귀 주변을 윙윙거리며 몸을 어지럽힌다. 낮에 일하면서 흘린 진한 땀 냄새가 깔따구의 식욕을 돋우는 것 같기도 하다. 질기게도 성가신 놈이다.

깔따구가 귀찮아서 손을 휘저으며 다니는 것을 이웃 밭의 형님이 보고 깔따구가 호랑이 눈을 빼먹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랑이가 종일 온 산을 다니다가 해 질 무렵이 되자 숲속에 몸을 뉘어 쉬려고 하였다. 그때 깔따구가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호랑이는 깔따구를 쫓으려고 앞발로 휘젓다가 그만 자기 날카로운 발톱에 눈깔이 찔려 빠져버렸다고 한다.

나도 눈앞으로 날아다니는 깔따구를 쫓으려고 손을 휘젓다가 내 손에 내 눈이 찔릴 뻔한 적이 많다. 깔따구가 무섭게 달려들면 뛰어서 농막 안으로 들어간다. 따라오는 놈이 있으면 스프레이 살충제를 머리 주변에 뿌린다. 급하게 뿌리다가 눈과 귀에도 들어간다. 깔따구 쫓으려다가 살충제 세례를 받기도 한다. 오죽하면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깔따구이겠는가.

살다 보니 이 깔따구같이 귀찮은 것들이 많다. 호랑이같이 강하고 힘센 놈보다 깔따구같이 작지만 귀찮게 하는 것이 더 무섭다. 가톨릭에서 죄를 원죄(原罪)와 본죄(本罪)로 나누고 본죄를 대죄와 소죄로 나눈다. 대죄는 십계명 등 하느님의 법을 크게 어겨 은총을 완전히 잃게 되어 하느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소죄는 인간의 나약함과 결함으로 일상 속에서 범하는 사소한 죄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잃지 않을 정도의 죄이다.

소죄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기에 고해성사를 보지 않더라도 참회 행위를 통해 속죄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소죄라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습관적으로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소죄가 나에게 꼭 깔따구 같다.

가톨릭 전례력에 특별히 중요한 신비를 경축하는 대축일이 있다. 대축일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것을 판공성사라고 한다. 이 판공성사에는 부활판공과 성탄판공이 있다. 기뻐해야 할 때를 맞이하기 위해 회개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때가 되면 고민이 깊어진다. 아내에게 "뭘 고백하지·"라고 어리석은 질문도 한다. 생각도 없이 지은 소죄를 잊고 산다. 매달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소죄이니 다음에 성사를 봐도 된다는 유혹에 시간은 지나가고 죄라는 것도 잊어버린다. 고해성사를 보려고 성찰하면 지은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 하느님이 이미 아는 내 죄를 내가 모른다. 그러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판공성사 때가 되면 귀찮아한다.

해 질 무렵이면 무섭게 활동하는 깔따구도 해가 지고 찬 밤바람이 일면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치 욕망이 일어나 끓다가 금방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다음 날 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깔따구의 활동이 다시 시작된다.

그 깔따구같이 귀찮은 소죄가 내 영혼의 눈을 파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황혼녘에 찾아오는 깔따구는 내 영혼이 쉬고 싶을 무렵이면 찾아오는 유혹과 같다.

때가 되면 일어나는 내 마음의 깔따구를 피해야 한다. 이에 맞서려고 하면 내 영혼의 눈알이 빠지고 말 것이다. 깔따구가 활동하면 농막 안으로 피하듯이 내 마음에 욕망이 일어나면 죄를 짓지 않도록 피해야 한다. 그 욕망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맞서려다가 오히려 내 몸과 영혼을 상하게 할 수 있다. 귀찮은 깔따구가 내 눈알을 빼는 무서운 깔따구가 될 수 있다.

전민호



충북대학교 도서관 근무

푸른솔문학 신인상 수상

가페 작품공모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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