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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대학생이 된 큰 애가 학교에 가기 전, 수조 속 구피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 큰 수조(水槽)에는 한들거리는 물풀들, 가끔씩 머리를 들어 물을 토해내는 공룡모양의 장식, 입을 벌릴 때마다 뽀글뽀글 물을 뿜어 올리는 무지개 빛깔의 커다란 조개가 눈길을 끌었다. 앙증맞은 열대어들은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한가운데 그럴 듯한 유럽풍 성곽까지 들어앉힌 파르스름한 수조는 제법 환하고 아름다워서 큰애는 한참씩 물 속 세계에 몰아지경으로 빠져 있곤 했다. 걸음마시절부터 이제는 스무 살, 어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한결 같이 곤충이며 작은 뭇 생명체에 빠져 지내는 것이 슬몃 웃음이 나기도 한다.

수조를 넋 잃은 듯 바라보던 큰 애는 한동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초등학교 때 또래의 아이들이 한창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을 무렵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곤충이나 물고기 등에 쏠려 있었다. 아이의 곤충에 대한 애정은 좀 유별나서 어느 때부터인가 집안은 온갖 곤충들의 전시장이 되어 버렸다. 나무에서 떼어낸 사마귀 알집, 앞산의 썩은 나무를 파헤쳐 잡아온 넓적 사슴벌레의 애벌레, 재래시장에서 얻어 온 새우, 미꾸라지, 가재 등….

"아빠! 물 달팽이가 새끼 낳았어. 빨리 와봐"

어느 날 아이의 호들갑에도 내가 하던 일에서 손을 떼지 않자 급기야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수조 앞에 앉혔다. 하지만 아무리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도 무엇이 물 달팽이 새끼라는 것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을 뚫어져라 바라본 끝에 정말 먼지보다도 작은, 유리에 살짝 묻은 흰 점 같은 것이 보였다. 너무 티끌 같아서 여하한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내 육안으로 확인한 것 중 가장 작은 생명체였다. 그런데 그것이 물 달팽이 새끼라는 것이다. 아이는 신나고 들떠서 어쩔 줄 몰랐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원에서 돌아와 수조 앞에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청소부 물고기가 물 달팽이 새끼를 먹어 치웠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수조 뒤쪽의 물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잠적하듯 가라앉아 있다가 가끔 수조 안을 한 바퀴 시찰하러 나오곤 하는 청소부 물고기가 그 큰 입으로 유리벽을 한번 '슥' 핥았는데, 그 바람에 새끼 달팽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였다.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저녁 입맛을 잃을 정도로 서러워했다. 그 희미하고 가물거리는 하나의 목숨에 주목했던 아이의 마음, 불과 며칠 동안이었지만 그 작은 새끼 달팽이와는 어떤 교감을 나누었으며, 도대체 그 미약한 존재감에 아이가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티끌 같은 모습의 생명이라 해도 엄연히 우주의 기운을 받아 만들어진 하나의 화육(化肉)일진대 어찌 제 스스로의 빛을 드러내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빛은 아직 무구한 시선을 가진 자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법인 모양이다. 우주의 간절한 기운으로 맺어진 한 점 정혈과도 같은 생명이기에 또 다른 생명인 아이와 교감했을 것이다.

"너, 물 달팽이 없어졌다고 울고불고 한 생각나니?"

수조에서 시선을 거두고 대학기말시험을 위해 문을 나서던 큰 애가 아련한 듯 말한다.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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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